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내 이름은 영화 리뷰, 제주를 알고 나니 풍경이 다르게 보였다

wowsnowflake 2026. 9. 22. 16:27

목차


    제주도를 좋아한다.

    아마 제주도를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느슨해지고, 돌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모습도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며칠을 보내도 여행을 왔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그런데 제주4·3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뒤부터 이상하게 제주가 예전처럼만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예쁘다.

    그런데 그냥 예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바다가 너무 파랗고, 하늘이 너무 맑고, 초록색이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눈이 시리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묘한 느낌.

    영화 <내 이름은>을 보고 나서 그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이 영화는 제주4·3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기억을 따라간다. 어린 시절 겪었던 일이 한 인간의 삶에 얼마나 길게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뒤 내가 궁금해진 것은 사건의 결말만이 아니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디까지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걸까.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기억의 한 형태일까.

    제주에는 풍경만 있는 줄 알았다

    여행을 다닐 때 우리는 이상할 만큼 그 장소의 과거에는 관심이 없다.

    맛집을 검색하고, 카페를 찾고, 숙소를 고르고,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를 찾아간다.

    나 역시 그랬다.

    제주에 가면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갈지부터 생각했다.

    그런데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니 같은 장소가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없는 바닷가를 보면 그냥 한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곳에 누군가의 가족사가 겹쳐 있다면 그 바다는 더 이상 나에게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영화 <내 이름은>이 불편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제주가 아름다운 장소라는 사실과 그곳에 끔찍한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서로 지워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곳이라고 해서 슬픈 역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슬픈 역사가 있다고 해서 그곳의 아름다움이 가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묘하게 만든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보는 것은 어쩌면 그 장소의 아주 얇은 표면일지도 모른다.

    사진 한 장에 담기는 것은 바다와 하늘뿐이지만, 그 땅 위에는 사진으로 찍히지 않는 시간이 훨씬 많이 쌓여 있을 테니까.

    그래서 요즘은 여행을 가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곳은 나에게 어떤 장소지만,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는 어떤 장소일까?’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풍경을 보는 방법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인생은 사건이 끝났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내 이름은>에서 가장 오래 남았던 것은 제주4·3이라는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정순이었다.

    역사책에서는 사건에 시작과 끝이 있다.

    몇 년도에 시작했고, 어떤 일이 있었고, 언제 끝났는지를 적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인생에는 그런 종료 버튼이 없다.

    사건이 끝났다고 해서 그날의 일이 한 사람에게도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정순에게 과거는 오래전 일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삶에 남아 있는 일이었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부모가 된 뒤의 나를 생각했다.

    내 아이들에게는 앞으로 수십 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해주는 말 한마디, 어떤 경험 하나가 아이의 기억 속에서는 전혀 다른 크기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내가 어릴 때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까지 기억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큰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흐릿해지고,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몇십 년 뒤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 시대의 폭력과 상실은 어떨까.

    그것을 겪은 사람이 평생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 속 정순을 보고 있으니 ‘과거의 사건’이라는 말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사람에게 과거는 과거형이 아니었을 테니까.

    나는 이 영화가 역사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좋았다.

    거대한 사건을 한꺼번에 보여주기보다 한 사람의 얼굴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숫자보다 사람이 먼저 보인다.

    그리고 그때부터 역사라는 단어가 조금 무거워진다.

    역사를 알수록 이상하게 자신이 없어지는 순간

    사실 나는 역사를 많이 알수록 자신감이 생길 줄 알았다.

    많이 알면 판단도 쉬워질 것 같았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였다.

    알아갈수록 ‘내가 알고 있는 게 정말 맞나?’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어떤 사건을 놓고도 서로 다른 이야기가 존재하고, 누가 무엇을 기록했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방향도 달라진다.

    나는 내가 꽤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 역시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에 더 쉽게 마음이 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확증편향이라는 말을 알고 나서는 더 그렇다.

    내가 이미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쉽게 받아들이면서 반대되는 이야기는 괜히 한 번 더 의심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고 있다면 나는 진실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만든 작은 방 안에서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까지 하고 나니 역사 이야기를 볼 때 함부로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믿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더 많이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의 이야기만 듣고 결론을 내리지 않고, 당시의 자료도 찾아보고, 피해를 겪은 사람들의 기록도 읽어보고, 공식적인 조사 결과도 살펴보는 것.

    내가 가진 생각과 반대되는 자료를 일부러 외면하지 않는 것.

    어쩌면 역사 앞에서 가져야 할 태도는 확신보다 이런 조심스러움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내 이름은>은 나에게 어떤 답을 내놓은 영화라기보다, 내가 얼마나 쉽게 ‘안다’고 생각하는지를 돌아보게 한 영화였다.

    나는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사람이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자꾸 나를 그 시대에 갖다 놓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겁이 많았을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무언가를 하려고 했을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 자체가 조금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미 평화로운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고,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과거의 사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공포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내가 ‘나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막상 내 가족의 목숨이 걸려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이들이 위험하다면?

    남편이 위험하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옳고 그름을 차분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아마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나에게 과거의 사람을 평가하는 영화가 아니라, 내가 그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인간이 될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 질문은 생각보다 불편했다.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과연 그럴지는 모르겠다.

    사람은 평소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할 때보다 아무것도 선택할 필요가 없는 평화로운 날에 훨씬 쉽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지금의 평범함을 아이들에게 넘겨주는 일

    영화를 보고 난 뒤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도 조금 달라졌다.

    아이들은 오늘도 별것 아닌 일로 싸우고 웃는다.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숙제를 미루고, 게임을 하고 싶어 하고, 주말에 어디 갈지 묻는다.

    나는 그런 일상이 때로는 귀찮기도 했다.

    왜 숙제를 안 했냐고 잔소리하고,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느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 평범한 장면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조건 위에 놓여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이 아무 걱정 없이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것.

    내가 아이들에게 ‘내일 학교 가야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가족이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다시 만날 수 있는 것.

    너무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나는 거창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역사를 바꾸지도 못하고, 과거의 사람들을 대신해줄 수도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평범함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 것, 아이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조금씩 이야기해주는 것, 그리고 내가 무엇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한 번쯤 다시 확인해보는 것 정도일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집도, 돈도, 물건도 있겠지만 결국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분위기 역시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일 테니까.

    제주를 다시 보게 만든 영화

    <내 이름은>을 보고 제주가 슬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주가 한 겹 더 깊어진 느낌에 가깝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쯤 가보고 싶은 환상의 섬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일 것이다.

    같은 바다를 보고도 누구는 여행을 떠올리고, 누구는 그 바다에 얽힌 오래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차이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이제 제주에 가게 된다면 예전처럼 예쁜 풍경만 보고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다.

    한 번쯤 그 땅의 이야기를 찾아볼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장소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그곳의 유명한 맛집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조금 들여다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이름은>은 내게 그런 영화였다.

    보고 나서 눈물이 쏟아지는 영화라기보다, 영화가 끝난 뒤 머릿속에서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 영화.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내가 믿는 것은 어디에서 온 걸까.’

    ‘나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내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이 하루는 얼마나 오래 지켜져야 할까.’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제주를 생각하면 바다가 먼저 떠올랐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이제 제주를 보면 예전보다 더 아름답고, 동시에 조금 아프다.

    눈이 시리게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면, 아마 이런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