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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영화 리뷰, 나는 절대 저렇게 못 살겠지만 그래서 좋았다

wowsnowflake 2026. 9. 23. 16:48

목차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절대 저렇게 못 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은 좋았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끔 묘한 해방감이 생긴다.

    나는 아마 재희처럼 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이고, 내일도 걱정되고, 돈도 생각해야 하고, 가족도 생각해야 한다. 하고 싶은 대로만 살기에는 현실에서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 영화 속 재희는 다르다.

    술을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침없이 말한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보고 있으면 ‘저래도 되나?’ 싶다.

    그런데 그게 좋았다.

    내가 평소에 하지 못하는 생각과 행동을 영화 속 누군가가 대신 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도시의 사랑법>은 내게 단순히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라는 묘한 해방감을 주는 영화에 가까웠다.

    대도시의 사랑법 줄거리, 사랑보다 진한 두 사람의 우정

    영화의 중심에는 재희와 흥수가 있다.

    재희는 눈치를 잘 보지 않는 자유로운 성격의 인물이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랑과 인간관계에서도 비교적 솔직하다. 반면 흥수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가며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두 사람은 대학교에서 만나 서로의 비밀과 약점을 알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된다.

    둘의 관계가 재미있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연애의 공식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남녀가 함께 살고, 서로의 연애사를 알고, 서로의 가장 추한 모습까지 보는데도 둘은 연인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연인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된다.

    20살에 만난 두 사람은 1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통과한다. 대학생이던 시절부터 사회인이 되고,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술에 취하고, 싸우고, 다시 화해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둘의 관계도 조금씩 변한다.

    나는 이 관계가 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꼭 사랑과 우정으로 깔끔하게 나뉘는 것은 아니니까.

    누군가를 너무 잘 알아서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곁에 있을 수도 있다.

    재희와 흥수는 서로에게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연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데 가족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

    내가 망가진 모습을 보여줘도 도망가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한 명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이런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등장인물, 김고은과 노상현이 만들어낸 재희와 흥수

    김고은, 재희

    재희는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인물이다.

    자유분방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지나치게 계산하지 않는다. 제작진 역시 재희를 ‘오늘만 사는 구재희’라고 표현할 정도로 현재에 충실한 인물로 설명했다. 김고은은 재희가 겉으로는 자유롭지만 그 안에는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순수함과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재희가 단순히 ‘쿨한 여자’로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는 재희 같은 사람을 실제로 만난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처음에는 조금 거리를 뒀을 것 같다.

    ‘저 사람 너무 자유롭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조금만 조심하면 될 텐데.’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영화로 보니까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노상현, 흥수

    흥수는 재희와 정반대처럼 보인다.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않고, 사람들에게 일정한 거리를 둔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기 때문에 재희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마음속에 담고 있는 인물이다.

    노상현은 흥수를 단순히 냉소적인 인물로 보지 않고, 그 안에 여리고 순수한 면이 있는 사람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흥수와 재희가 함께 있을 때 균형이 생긴다.

    한 사람은 너무 많이 말하고, 한 사람은 너무 많이 숨긴다.

    한 사람은 오늘을 살고, 다른 한 사람은 미래를 걱정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둘이 붙어 있으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내가 저런 친구를 현실에서 만난다면?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게 현실적인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주변에 재희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이 질문이 꽤 재미있었다.

    영화에서는 재희가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이라면 어떨까.

    내 친구가 재희처럼 살고 있다면 나는 과연 똑같이 생각할까.

    술을 좋아하고, 연애도 자유롭게 하고, 남들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친구.

    처음에는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걱정할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생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그 친구에게 은근히 ‘정상적인 삶’을 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혼은 해야 하지 않느냐고.

    돈은 모아야 하지 않느냐고.

    조금은 조심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런데 그 순간 내가 생각하는 ‘정상’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이 영화가 재미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였다.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이렇게 다른데 우리는 왜 자꾸 다른 사람을 내가 익숙한 방식 안에 넣으려고 할까.

    누군가는 안정적인 삶을 원하고, 누군가는 자유를 원한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싶고, 누군가는 혼자 살고 싶다.

    누군가는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소수의 사람만 곁에 두고 싶어 한다.

    그것을 전부 내가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틀렸다’고 말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며 느낀 묘한 해방감

    재희를 보면서 계속 웃었던 이유도 아마 이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저렇게 못 사니까.

    나는 계산할 것이 너무 많다.

    오늘의 기분만 보고 결정할 수 없는 일도 많고, 내일을 생각해야 하는 일도 많다.

    그런 나에게 재희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부러운 사람이었다.

    내가 머릿속에서 한 번쯤 생각만 해보고 실제로는 하지 않았던 행동을 너무 쉽게 해버린다.

    그래서 재희를 보고 있으면 속이 조금 시원하다.

    영화가 대신 해주는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그런데 재희도 마냥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다.

    이언희 감독은 재희를 자신과 다른 모습이라 부럽게 느꼈고,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일종의 판타지적인 인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약 5년이 걸렸으며, 감독이 원작을 읽은 뒤 단편 ‘재희’를 직접 영화화하고 싶다고 제작사에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 이야기를 알고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니 재미있었다.

    감독에게도 재희가 일종의 ‘다른 삶’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 속 캐릭터에게 우리가 느끼는 해방감은 꼭 그 사람이 완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보는 것.

    그 자체가 가끔은 꽤 근사한 경험이다.

    대도시의 사랑법 비하인드, 영화와 원작은 조금 다르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집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하나의 긴 이야기가 아니라 네 편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화는 그중 ‘재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가져왔다. 다만 영화는 원작의 ‘재희’에 다른 요소를 더해 두 사람의 관계를 영화적인 이야기로 확장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영화와 드라마가 같은 원작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영화는 재희와 흥수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고, 드라마는 원작의 네 에피소드를 각각 다른 이야기로 확장했다. 박상영 작가가 영화와 드라마 작업에 모두 참여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또 하나 재미있는 비하인드가 있다.

    김고은과 노상현은 이 영화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김고은은 두 사람이 친해지기 위해 실제로 클럽에서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배우들 사이의 거리감을 줄이는 과정이 영화 속 재희와 흥수의 자연스러운 친구 관계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됐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둘이 화면에 같이 있을 때 굉장히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보인다.

    억지로 만든 ‘영화 속 친구’라기보다 정말 저 둘이 대학 때부터 붙어 다녔을 것 같은 느낌이다.

    반짝이는 청춘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사실 이 영화에 엄청난 사건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술을 마시고, 싸우고, 연애하고, 상처받고, 또 아무렇지 않게 다음 날을 맞는다.

    젊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시기.

    실수도 하고, 엉뚱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점점 계산을 많이 하게 된다.

    이걸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손해는 아닌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지.

    그래서인지 영화 속 재희와 흥수의 청춘이 조금 부럽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서툴렀고, 그래서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을 시도했을 것이다.

    영화 속 두 사람은 반짝인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반짝이는 것 같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니까

    영화 제목은 <대도시의 사랑법>이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제목이 꽤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도시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살아가는 방법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자기 기준을 세운다.

    저 나이에는 결혼해야 하고,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돈을 모아야 하고,

    직업은 이래야 하고,

    연애는 이렇게 해야 하고,

    가족은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특이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재희와 흥수를 보고 있으면 굳이 하나의 정답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 싶어진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같은 모양일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재희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 재희가 계속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하지 못하는 삶을 보여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아주 잠깐,

    ‘그래, 저렇게 살아도 되는 사람이 있지.’

    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누군가의 삶을 따라 하라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저 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것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구나’ 하고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볼 수 있는 여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무겁게 의미를 찾으면서 보기보다,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고 보는 것도 괜찮은 영화다.

    반짝이는 청춘들이 정신없이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실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조금 젊어진 기분이 든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이런 생각이 남는다.

    나는 저렇게 살지 못하지만,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정도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대도시는 지금보다 조금 덜 답답해지지 않을까.

    그게 내가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고 느낀 가장 솔직한 감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