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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영화 리뷰: 오마주, 50대50 구조, 상실의 미학

wowsnowflake 2026. 7. 12. 05:05

목차


     

    《라라랜드》를 처음 봤을 때 저는 당연히 해피엔딩을 기대했습니다. 화려한 색감, 흥겨운 음악, 두 사람의 설레는 눈빛까지.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제 마음에 남은 건 설렘이 아니라 한동안 털어낼 수 없는 묵직한 여운이었습니다. 뮤지컬 영화가 싫다는 분들도, 로맨스 영화를 잘 안 본다는 분들도 이 영화만큼은 한 번 제대로 짚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뮤지컬의 오글거림을 넘어선 오마주 연출

    뮤지컬 영화를 불편하게 느끼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노래가 터져 나오는 순간, 몰입이 뚝 끊기는 경험 말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쉘부르의 우산》처럼 모든 대사가 노래인 영화는 솔직히 아직도 적응이 안 됩니다.

    흥미로운 건 데이미언 셔젤 감독 본인도 같은 이유로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식이 바로 현실과 환상의 분리, 즉 미장센(mise-en-scène)을 통한 공간 구분입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색감, 소품 등을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현실 장면은 철저히 현실적으로, 환상 장면은 노골적으로 과장되게 연출함으로써 관객이 "저건 상상이구나"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 것입니다.

    오프닝 시퀀스(opening sequence), 즉 영화의 첫 장면 묶음을 떠올려 보면 이 전략이 바로 보입니다. 여기서 오프닝 시퀀스란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영화의 분위기와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초반부 장면들을 뜻합니다. 실제 LA 고속도로를 통제한 상태에서 수백 명의 배우와 댄서가 완벽한 타이밍으로 맞춰야 했던 이 장면은, 막힌 도로 위에서 춤을 추고 싶다는 '상상'을 표현한 것이지 실제 사건이 아닙니다. 그 구분이 선명하기 때문에 오글거리지 않고 오히려 자유롭게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바치는 오마주(hommage)의 폭도 놀랍습니다. 여기서 오마주란 선배 예술가나 작품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 스타일이나 장면을 의도적으로 재현하는 창작 기법을 말합니다. 《그리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카사블랑카》, 《물랑루즈》, 우디 앨런의 작품까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쉘부르의 우산》이 있습니다. 줄거리 구조,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삼각관계의 얼개까지 상당 부분을 가져왔습니다. 단순 모방이 아니라, 고전의 토대 위에 지금 시대의 이야기를 새로 얹은 셈입니다.

    50대50 구조가 만들어내는 상실의 미학

    제가 이 영화를 두 번째 봤을 때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 밤과 낮, 스타와 언더그라운드, 꿈과 현실. 영화 전체가 철저하게 대비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미아는 할리우드 스타를 꿈꾸는 사람, 즉 하늘에 속한 존재입니다. 세바스찬은 재즈 클럽을 여는 게 꿈인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입니다. 글자 그대로 땅 아래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 둘이 처음 낭만적으로 만나는 공간이 그리피스 천문대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 언덕에서 둘은 밤에 만나고, 낮에 헤어집니다. 낭만은 밤에, 현실은 낮에. 이 50대50의 대비 구조가 영화 내내 반복됩니다.

    이 구조가 더욱 잔인하게 작동하는 지점은 음악입니다. 영화 안에서 음악이 흐르는 순간만큼은 현실이 꿈으로 전환됩니다. 그런데 음악은 끝납니다. 반드시. 그 순간 모든 것이 현실로 돌아옵니다. 두 사람의 마지막 상상 속 춤도 음악이 끊기는 순간 사라집니다. 가장 꿈 같은 장면들로 꿈의 유한함을 이야기하는 역설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를 처음 영화에서 의식적으로 느낀 것이 《라라랜드》였습니다.

    《라라랜드》가 보여주는 상실은 단순한 이별이 아닙니다. 꿈을 쫓으면 사랑에 쏟을 시간이 줄고, 사랑을 붙잡으면 꿈이 멀어지는 구조. 이건 2016년 개봉 당시 젊은 세대가 공통으로 겪던 딜레마였고, 지금도 다를 게 없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관객 조사에 따르면 《라라랜드》는 국내 개봉 당시 20~30대 관객 비율이 전체의 60%를 넘겼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수치는 영화가 단순한 뮤지컬이 아니라 그 세대의 감정을 정확히 건드렸다는 방증이라고 봅니다.

    라라랜드의 50대50 구조를 한눈에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아(하늘·스타) vs 세바스찬(땅·언더그라운드)
    • 밤(낭만·환상) vs 낮(현실·이별)
    • 음악이 흐르는 순간(꿈) vs 음악이 끊기는 순간(현실)
    • 꿈을 이룸 vs 함께 이루지 못함

    결말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유

    엔딩 시퀀스의 상상 장면, 즉 미아가 세바스찬의 재즈 클럽에서 그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저는 예상치 못하게 울었습니다. 헤어짐이 슬퍼서가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놓아주는 그 선택이 너무 현실적으로 와닿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하리의 미국인》, 《퍼니 페이스》, 《빨간 풍선》 등 여러 고전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습니다. 셔젤 감독이 이 영화에 촘촘하게 심어놓은 복선들, 예를 들어 미아 방에 붙어있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포스터, 이후 미아 본인이 벽화가 되는 장면 등은 제가 직접 두 번 보기 전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라이언 고슬링이 영화 속에서 연주하는 피아노 장면 대부분은 대역이 아닙니다. 촬영 전 약 3개월간 매일 재즈 피아노를 연습하여 직접 소화했습니다. 재즈(Jazz)란 19세기 말 미국 남부 흑인 문화에서 발생한 음악 장르로, 즉흥 연주(improvisation)와 복잡한 화성 구조가 핵심입니다. 여기서 즉흥 연주란 악보 없이 그 순간의 감정과 기술로 실시간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말합니다. 세바스찬이 재즈를 고집하는 이유, 그리고 그게 왜 '언더그라운드'일 수밖에 없는지가 이 장르의 특성에서 비롯됩니다. 대중의 취향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고집과 재즈의 즉흥성은 닮아있습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사랑이 영원해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함께하지 못했지만, 서로가 서로의 꿈을 밀어준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은 《라라랜드》에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총 6개 부문 수상을 안겼고, 셔젤은 32세에 역대 최연소 감독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기술적 완성도만으로 받은 상이 아니라, 이 구조적 치밀함과 정서적 진정성이 인정받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라라랜드》는 꿈도, 사랑도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꿈을 쫓다 놓친 것들, 사랑을 붙잡다 미룬 것들이 있어도 그 자체가 삶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음악이 끝나면 현실로 돌아와야 하지만, 그 음악이 흘렀던 순간만큼은 진짜였다는 것처럼요. 뮤지컬 장르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한 번만 믿고 시작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적어도 《라라랜드》는 그 불편함을 넘어설 이유가 충분한 작품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wyqWf-O-q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