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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눈물나게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40대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20대 시절에는 어른들이 "참 좋을 때다, 반짝반짝 빛난다" 하셔도 그냥 인사치레처럼 들렸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 말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새삼 실감합니다. 영화 한 편이 그 감각을 다시 꺼내줬습니다. 바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입니다.

타이밍이 어긋난 사랑, 데이지의 행동은 정말 변덕이었을까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데이지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벤자민을 사랑한다면서 왜 계속 밀어냈는지, 왜 타이밍마다 엇갈렸는지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 다시 떠올려보니 데이지의 행동이 변덕이 아니라 구조적 비극이었다는 게 보였습니다.
두 사람의 시간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어린 데이지와 노인 외모의 벤자민은 나이 차이가 너무 커서 접점이 없었습니다. 젊고 활기찬 데이지와 중년 외모의 벤자민의 각자 다른 삶의 궤도를 달리는 시기였습니다. 비슷한 나이대가 된 시기 두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전히 함께한 황금기입니다. 이후 다시 역방향으로 멀어집니다. 데이지는 나이 들고 벤자민은 점점 젊어집니다.
즉, 두 사람의 사랑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이들을 반복적으로 어긋나게 만든 셈입니다. 이걸 영화 용어로 내러티브 아이러니(narrative irony)라고 합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아이러니란, 관객은 이미 결말을 예감하지만 인물들은 그것을 모른 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구조적 비극을 가리킵니다. 제가 처음 영화를 보면서 데이지에게 답답함을 느꼈던 이유가 바로 이 구조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젊음이라는 감각, 왜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가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벤자민이 점점 젊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주름이 펴지고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그 과정을 보면서 제가 처음 든 생각은 "참 싱그럽다"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 든 생각은 "나는 저 시절을 얼마나 낭비했을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젊음은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완전히 반대입니다. 젊음의 가치는 그 시절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선명하게 보입니다. 20대에 저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금 이 순간의 반짝임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이 감각을 시각적으로 아주 정교하게 표현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시각적 내러티브(visual narrative)입니다. 시각적 내러티브란 대사 없이 화면의 색조, 조명, 인물의 움직임만으로 감정과 시간의 흐름을 전달하는 영화적 기법을 말합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이 기법을 통해 벤자민이 젊어질수록 화면 전체의 온도가 따뜻해지는 연출을 구사했습니다. 세계적인 영화 연구기관인 미국영화연구소(AFI)도 이 작품을 시대를 초월한 인간 이야기를 담은 수작으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출처: American Film Institute).
데이빗 핀처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왜 놀라운가
저는 이 영화를 감독을 모르고 처음 봤습니다. 다 보고 나서 데이빗 핀처 작품이라는 걸 알았을 때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세븐』과 『파이트 클럽』을 만든 감독이 이렇게 서정적이고 따뜻한 영화를 연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핀처 감독의 연출 방식 중 특히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이 모티프(motif) 반복 기법입니다. 모티프란 영화 전체에 걸쳐 반복 등장하는 상징적 소재나 이미지로, 주제를 은근하게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벌새가 대표적인 모티프입니다. 벌새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뒤로 날 수 있는 새입니다. 시간을 거꾸로 사는 벤자민의 존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상징이죠. 영화 속 벌새는 총 세 번 등장하는데, 마이크 선장의 가슴 타투, 선장이 사망하던 날 새벽, 그리고 데이지가 눈을 감는 마지막 장면이 그것입니다.
또한 이 영화의 각본은 『포레스트 검프』를 집필한 에릭 로스가 썼습니다. 두 작품 모두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삶을 교차시키는 서사 구조(cross-cutting narrative structure)를 사용합니다. 서사 구조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과 순서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 두 영화는 모두 주인공의 일생을 시대적 배경 속에서 펼쳐보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에릭 로스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 단편소설에서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콘셉트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완전히 새로 썼는데, 이 결정이 영화를 원작과 전혀 다른 감동의 층위로 끌어올렸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의미,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말
영화를 보고 나서 알 수 없는 우울감이 한동안 남았습니다.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왜 우울한지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곰씹어보니 그 우울은 영화가 건드린 어떤 진실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도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완벽한 타이밍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일반적으로 인생영화라 하면 강렬한 교훈이나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절반밖에 못 봅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교훈이 아니라 감각입니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를 시간적 자기관(temporal self-concept)과 연결지어 볼 수 있습니다. 시간적 자기관이란 과거, 현재, 미래의 자신을 얼마나 연속된 존재로 인식하는가에 관한 개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의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젊은 시절의 자신을 거의 다른 사람처럼 회고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벤자민이 사랑하는 데이지를 위해 스스로 떠나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사랑이 곁에 머무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상대의 삶을 위해 물러서는 결정임을 보여주는 그 장면은, 나이 들어 다시 생각할수록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이 영화는 두 번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거꾸로 흘러가는 시간에 집중하고, 두 번째엔 벤자민 곁을 스쳐간 사람들, 마이크 선장, 피아노 치던 할머니, 퀸이, 그리고 데이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면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삶을 완성하는 건 시간의 방향이 아니라 그 시간 안에서 누구를 어떻게 사랑했느냐라는 것, 이 영화는 그것을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깊게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