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보이후드 영화 리뷰, 아이만 자라는 줄 알았는데 나도 같이 자라고 있었다

wowsnowflake 2026. 9. 24. 17:13

목차


    영화 <보이후드>를 보기 전부터 이 영화가 조금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소년이 6살에서 18살이 될 때까지의 모습을 실제로 같은 배우가 연기했고, 영화도 정말 12년에 걸쳐 촬영했다는 것.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보통 영화라면 어린 배우가 자라면 다른 배우로 바꾸면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같은 배우와 제작진이 매년 만나 촬영했고, 실제로 성장하는 모습을 영화 안에 그대로 담았다.

    영화라는 것이 결국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보이후드>는 조금 달랐다.

    이 영화에서는 시간이 이야기를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12년 동안 누군가의 삶을 지켜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지금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두 딸이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보이후드 줄거리, 특별한 사건보다 특별하지 않은 날들의 기록

    <보이후드>의 주인공 메이슨은 여섯 살 소년으로 시작한다.

    누나 사만다, 엄마 올리비아와 함께 살아가고 아빠 메이슨 시니어는 함께 살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낸다. 엄마의 선택에 따라 이사를 하고,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고, 친구를 만나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때로는 방황하면서 메이슨은 조금씩 자란다. 그렇게 어린아이였던 메이슨은 어느새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화적인 사건이 많지 않다.

    누군가 갑자기 죽거나, 인생을 뒤집어놓을 만한 거대한 사건이 계속 벌어지는 영화가 아니다.

    그냥 사람이 살아간다.

    학교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가족과 밥을 먹고,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진로를 고민한다.

    어떤 해에는 별일이 없고, 어떤 해에는 꽤 힘든 일이 생긴다.

    그리고 다음 해가 온다.

    이게 전부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루하지 않다.

    아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대부분 특별한 사건으로 채워져 있지 않으니까.

    오늘 아침 아이가 늦게 일어나서 잔소리를 한 것.

    학교 준비물을 챙겨줬던 것.

    아이와 말다툼을 했던 것.

    저녁을 먹으며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눈 것.

    그때는 별것 아닌 하루인데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 그런 장면이 기억난다.

    <보이후드>는 바로 그 별것 아닌 날들의 누적을 영화로 만들었다.

    에단 호크를 다시 만나는 반가움

    그리고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내가 알고 있던 또 하나의 정보가 있었다.

    출연진 중에 에단 호크가 있다는 것.

    나는 예전부터 에단 호크를 좋아했다.

    그래서 영화 정보를 보다가 이름을 발견했을 때 반가웠다.

    특히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에단 호크의 조합은 <보이후드>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렵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함께 작업했지만, 이미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사람의 변화를 영화에 담아낸 경험이 있었다. <보이후드>에서도 에단 호크는 메이슨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젊은 시절의 에단 호크를 기억하고 있던 내게 영화 속 아버지의 모습은 조금 묘했다.

    나도 같이 나이를 먹었다는 걸 갑자기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좋아했던 배우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봤을 때 생기는 반가움이 있다.

    ‘아, 이 사람도 이렇게 변했구나.’

    그런데 <보이후드>에서는 그 변화 자체가 영화의 일부가 되어 있다.

    에단 호크만 변한 것이 아니다.

    아이도 변하고, 엄마도 변하고, 누나도 변한다.

    그리고 관객인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동안 내 시간과 나란히 걷게 된다.

    나는 지금 두 아이의 보이후드를 보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것은 메이슨이 아니었다.

    내 아이들이었다.

    나도 지금 누군가의 삶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두 딸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떻게 변해왔는지 나는 꽤 많은 장면을 기억한다.

    처음 걷던 모습.

    처음 말을 했던 순간.

    처음 학교에 가던 날.

    별것 아닌 일에 깔깔거리며 웃던 모습.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부모의 말을 예전처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까지.

    아이들은 정말 빠르게 변한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그 속도가 그렇게 빠르게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매일 보고 있으니까.

    어제도 봤고 오늘도 봤고 내일도 볼 사람이니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사진을 보면 깜짝 놀란다.

    ‘얘가 언제 이렇게 컸지?’

    <보이후드>를 보면서 바로 그 느낌을 경험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12년 동안 바라본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내 아이들의 시간을 같이 들여다본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남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오히려 자기 집의 시간이 자꾸 겹쳐 보일 것 같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상한 순간이 있다.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던 일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웃긴 추억이 되어 있다.

    아이의 떼를 받아주느라 하루 종일 지쳤던 날도 지나고 나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예민했던 시절도 지나고 나면 ‘그때 참 힘들었지’ 하면서 사진을 찾아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을 종종 떠올린다.

    물론 모든 순간을 그렇게 가볍게 넘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 힘든 일이 있다.

    아이와 갈등이 생기면 속이 상하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보면 그때의 고통과 함께 이상하게 따뜻한 장면도 남아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정말 중요해 보이는 일이 사실 몇 년 뒤에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으니까.

    반대로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이 시간이 나중에는 가장 그리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보이후드>는 그걸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카메라가 계속 기다린다.

    소년이 자랄 때까지.

    그리고 그 기다림 자체가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자라는 것은 아이만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남은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이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메이슨이 자라는 동안 엄마도 변한다.

    아빠도 변한다.

    누나도 변한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도 변한다.

    이게 참 이상했다.

    우리는 흔히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부모가 지켜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부모도 처음이다.

    첫 아이를 키울 때도 처음이고, 초등학생 아이를 키울 때도 처음이고, 사춘기 아이를 대할 때도 처음이다.

    아이에게 처음 찾아오는 변화는 부모에게도 처음 찾아오는 변화다.

    아이가 처음 학교에 갈 때 부모도 처음으로 초등학생의 부모가 된다.

    아이가 친구 문제로 고민할 때 부모 역시 처음으로 그런 문제를 마주한다.

    아이가 어느 순간 부모보다 친구 이야기를 더 많이 하기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름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아이들이 처음인 만큼 나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나도 부모가 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아이만 커지는 줄 알았는데, 사실 우리 모두 각자의 속도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12년 동안 매년 잠깐씩 만난 사람들이 만든 영화

    <보이후드>의 제작 방식은 알고 보면 영화의 내용만큼이나 놀랍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배우들과 12년 동안 매년 일정 기간씩 만나 촬영했다. 한 해에 약 15분 정도의 분량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작업했고, 12년 동안 같은 배우들이 다시 모였다. 배우들의 실제 나이와 외모 변화가 그대로 영화에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상당한 약속이다.

    영화 한 편을 찍는 것도 몇 달, 몇 년이 걸릴 수 있는데 이 영화는 무려 12년이다.

    그동안 배우의 사정이 바뀔 수도 있고, 감독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 제작 환경이 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어린 배우가 어떻게 성장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런 불확실성을 그대로 끌어안고 영화를 만든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매년 조금씩 찍었기 때문에, 영화 속 시간과 배우들의 실제 시간이 함께 흘렀다는 점이다. 그래서 메이슨의 얼굴이 변하는 것이 연기의 결과가 아니라 정말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 얼굴이다.

    그 사실을 알고 보면 화면을 보는 방식도 달라진다.

    ‘배우가 정말 잘 자랐네’가 아니라

    ‘정말 시간이 흘렀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시간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영화에 출연한 셈이다.

    내 인생도 나중에는 한 편의 영화가 될까

    <보이후드>를 보고 나니 조금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내 인생을 지금부터 12년 동안 누군가가 매년 15분씩 촬영한다면 어떤 영화가 될까.

    아마 별일 없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아이들 챙기고, 집안일하고, 일하고, 돈 걱정하고, 여행도 가고, 가끔 화내고, 또 웃고.

    엄청난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들을 전부 이어 붙이면 결국 하나의 삶이 된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그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연결된다.

    그래서 <보이후드>를 보고 나니 현재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오늘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었다고 화냈던 일도 언젠가는 기억이 될 것이고, 오늘 아이가 내 옆에서 웃었던 것도 언젠가는 과거가 될 것이다.

    지금은 그냥 지나가는 하루지만 사실은 다시 찍을 수 없는 장면이다.

    그렇다고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행복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것도 너무 피곤한 일이다.

    힘든 날은 힘든 날대로 지나가면 된다.

    짜증이 나는 날도 있고,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날도 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완벽하게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그 순간도 내 인생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 아닐까.

    보이후드를 보고, 지금의 시간을 조금 덜 서두르기로 했다

    <보이후드>는 아이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어른도 계속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아이의 성장만 생각나지 않았다.

    나 역시 계속 변하고 있었다.

    부모가 되는 법도 배워가고 있고, 아이와 관계를 맺는 법도 다시 배우고 있고, 예전에는 중요했던 것이 지금은 별것 아니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인생에서 완성되는 순간은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자라면 부모의 역할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어른이 되었다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새로운 장면이 계속 시작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두 딸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동시에 나도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덜 예민해지고,

    조금 더 기다릴 줄 알게 되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그것 역시 성장이라면 성장일 것이다.

    <보이후드>를 보기 전에는 12년 동안 한 소년을 촬영했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다른 것이 더 놀라웠다.

    사람의 인생은 생각보다 별것 아닌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별것 아닌 순간들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얼굴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모두 지금 그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

    아이도 자라고 나도 자란다.

    다만 서로 다른 속도로 자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아주 오래된 장면이 될 것이다.

    아마 그게 <보이후드>가 내게 남긴 가장 이상하고도 따뜻한 감상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