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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리를 잘하지 못합니다. 소위 말하는 요리 똥손에 가깝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지금보다는 조금 나았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제 요리 실력이 늘기는커녕 퇴화하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잘 먹습니다. 정말 웬만하면 잘 먹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요리를 대충하게 됩니다. 오늘은 뭘 해 먹일까 고민하다가도 냉장고에 있는 재료 몇 가지 꺼내서 대충 볶아주고, 국 하나 끓이고, 계란 하나 부쳐주면 아이들이 잘 먹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굳이 어렵게 만들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제 요리 실력이 점점 퇴화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부럽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 보고도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어떻게 저런 음식이 나오는지 신기한 사람들, 특히 TV나 영화에서 요리를 정말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일종의 선망 같은 것이 생깁니다. '나도 저렇게 요리를 잘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래서 《아메리칸 셰프》를 보면서도 음식보다 먼저 요리를 잘하는 주인공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제가 기억하게 된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들과 함께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이런 기분일까?
《아메리칸 셰프》의 주인공 칼 캐스퍼는 실력 있는 셰프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제대로 만들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레스토랑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마음대로 만들 수 없고, 유명 음식 평론가의 평가까지 신경 써야 합니다. 요리사에게 음식은 단순히 먹고사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자존심과 실력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할 텐데, 칼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요리하지 못하면서 점점 지쳐갑니다. 그러다 결국 결정적인 사건을 겪게 되고 레스토랑을 그만두게 됩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때부터 칼의 인생이 오히려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푸드트럭을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저도 영화를 보면서 조금 의외였습니다. 그렇게 실력 있는 셰프가 푸드트럭이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니 오히려 푸드트럭이 칼에게는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에서는 손님과 평론가의 평가, 메뉴에 대한 제약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푸드트럭에서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이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결국 요리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맛있는 한 끼를 만들어주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저에게는 그 모습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요리 똥손인 제가 셰프를 보며 느낀 선망
저는 영화를 보면서 계속 음식에 눈이 갔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화면 가득 등장하고, 요리하는 모습도 나오고, 음식을 자르는 장면도 나오고, 완성된 음식이 등장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음식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처럼 보입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저에게 요리는 대부분 생존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하면 뭔가를 만들어야 하고, 밥을 먹여야 하니까 냉장고를 열어봅니다. '오늘은 뭘 먹이지?' 이게 제 요리의 시작입니다. 반면 영화 속 칼은 음식 자체를 사랑합니다. 재료를 고르고, 조리하고, 맛을 보고,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멋있습니다. 저도 가끔은 상상합니다. 내가 요리를 정말 잘해서 냉장고 속 재료 몇 가지만 가지고도 근사한 한 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아이들이 엄마가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이야기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현실의 저는 아이들이 잘 먹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래서 더 웃깁니다. 아이들이 잘 먹으니까 요리를 잘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요리를 대충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점점 요리를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제가 셰프 영화를 보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는 저렇게까지는 못하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푸드트럭을 시작한다
칼은 결국 푸드트럭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들이 함께하게 됩니다. 저는 이 부분부터 영화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칼이 아들과 함께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음식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더 눈이 갔습니다. 사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막상 하루를 돌아보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무언가를 한 시간이 많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숙제를 해야 하고, 부모는 일을 해야 하고, 밥을 먹고 나면 씻고 자야 합니다. 매일 함께 있는 것 같지만 정말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영화 속 칼도 처음부터 완벽한 아버지는 아닙니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느라 아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푸드트럭을 함께하면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음식을 만들고, 이동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특별한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함께 음식을 만들고 함께 움직이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평범한 시간이 아들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뭉클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꼭 비싼 장난감이나 특별한 여행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와 함께 무언가를 하고, 함께 웃고, 함께 음식을 먹었던 평범한 시간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음식은 참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생각했던 것은 음식이었습니다. 음식이라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 어떤 음식 하나를 먹으면 갑자기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의 맛, 엄마가 해주던 반찬, 할머니 댁에 갔을 때 먹었던 음식,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먹었던 음식. 그 음식이 특별히 비싼 음식이었던 것도 아니고, 대단한 요리였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맛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저희 친정엄마도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음식을 평생 그리워하십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음식을 지금도 먹고 싶어 하시고, 그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형제들에게 나눠주시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음식이라는 게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식에는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그 음식을 만들었던 사람의 기억이 들어 있고, 함께 먹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들어 있고, 그 시절의 분위기까지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음식은 맛보다 기억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 칼이 아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모습도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아들에게 남는 것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기억만은 아닐 테니까요. 아빠와 함께했던 시간, 함께 요리했던 순간, 함께 여행했던 기억이 음식과 함께 남을 것입니다. 어쩌면 훗날 아들이 가장 그리워하게 될 것은 음식 자체가 아니라 그때의 아빠와의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엄마의 음식을 기억할까?
영화를 보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먼 훗날 엄마가 해준 음식으로 무엇을 추억하게 될까? 저는 요리를 잘하지 못합니다. 화려한 음식을 만들어주지도 못하고, 매일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주는 엄마도 아닙니다. 아이들이 잘 먹는다는 이유로 점점 더 대충 요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근사한 음식을 만들어주는데 나는 너무 대충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대단한 요리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나중에 기억하는 것은 음식의 맛만이 아닐 테니까요. 어쩌면 엄마가 아침마다 만들어주던 계란, 바쁜 날 대충 끓여주던 국, 가족이 함께 먹었던 김치찌개 같은 평범한 음식들이 훗날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음식이 몇십 년 후에는 가장 그리운 음식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희 엄마에게 할머니의 음식이 그런 것처럼요. 그래서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훗날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엄마가 해주던 음식 중 어떤 것을 가장 그리워할까. 제가 잘 만드는 특별한 요리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기억 속에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 하나쯤은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음식과 함께 엄마와 함께했던 평범한 날들도 같이 기억해준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맛있는 음식만큼 따뜻한 가족 영화
《아메리칸 셰프》는 처음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이 나오는 요리 영화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정말 맛있어 보입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고파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이 영화의 중심에 음식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안에는 가족의 사랑과 관계의 회복,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특히 칼이 아들과 함께 푸드트럭을 운영하면서 가까워지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결국 자신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을 다시 발견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음식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줍니다. 함께 먹고, 함께 만들고, 함께 이야기하게 합니다. 그래서 음식이 등장하는 영화는 이상하게 따뜻한 느낌이 있습니다. 《아메리칸 셰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요리하는 즐거움을 보여주고, 요리를 못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음식에 담긴 기억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요리를 못해도 괜찮아
영화를 보고 나서 갑자기 요리를 잘하고 싶어졌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저는 요리 똥손입니다. 아마 아이들이 계속 잘 먹어주는 한 제 요리 실력은 크게 발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메리칸 셰프》를 보고 나서 음식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은 꼭 잘 만들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만들고, 함께 먹고, 그 시간을 기억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음식은 충분히 특별해질 수 있으니까요. 칼이 푸드트럭에서 만든 음식이 아들에게 특별했던 이유도 단순히 음식이 맛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아빠와 함께 만들었기 때문이고, 함께 여행했기 때문이고, 함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언젠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지금의 식탁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이 아주 훌륭한 요리는 아니었더라도, 그때 함께 웃고 이야기했던 시간만큼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이 엄마가 해준 음식을 떠올리며 "그때 엄마가 해주던 그 음식 먹고 싶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할 것 같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가족의 사랑이 함께 담겨 있는 영화,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요리하는 즐거움을, 요리를 못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음식에 담긴 기억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해준 영화. 《아메리칸 셰프》는 보고 나면 배가 고픈 영화이면서 이상하게 마음도 따뜻해지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