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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한 번쯤 만났던 시인이 있다. 윤동주. 아마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의 시를 처음 만난 것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 한쪽에 실려 있던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같은 시를 읽고, 시험에 나오면 작품의 주제와 표현법을 외웠을 것이다. 그때는 윤동주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보다 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았다. 윤동주의 시에는 어린 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말이 있는데, 이상하게 읽고 나면 마음 한쪽에 오래 남는 것이 있었다. 거창한 말을 하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가슴을 건드렸다. 특히 나는 어릴 때부터 별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그래서인지 윤동주의 「서시」와 「별 헤는 밤」을 참 좋아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시를 읽는다는 것이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별을 세고, 지나간 사람을 생각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인의 모습이 좋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 아름다운 시를 쓴 사람의 삶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는 것을. 시 속의 문장은 그렇게 맑았는데, 그 문장을 쓴 사람에게 주어진 시대는 너무 어두웠다. 영화 《동주》는 바로 그 간극에서 시작되는 영화였다.
교과서에서 만났던 시인이 한 사람의 청년이었다는 사실
윤동주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시가 떠오른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상하게도 시보다 사람이 먼저 생각났다. 교과서 속 윤동주는 언제나 완성된 모습이었다. 「서시」를 쓴 시인, 「별 헤는 밤」을 쓴 시인,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저항시인. 하지만 영화 속 윤동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청년이었다. 친구와 웃고, 사랑을 고민하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고, 시를 쓰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래서 영화가 더 아팠다. 우리는 윤동주를 너무 일찍부터 ‘시인’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에게도 분명 청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청춘은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처럼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1930년대와 1940년대 일제강점기를 살아갔다. 조국의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고, 일본의 식민 통치가 점점 더 강해지던 시기에 공부하고 시를 썼다. 윤동주는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고, 용정에서 성장했다. 이후 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했다. 1943년 귀향을 앞두고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었고, 결국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1945년 2월 28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28세.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린 나이다. 영화 속 윤동주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더 그렇다. 우리는 너무 어린 사람을 너무 오래 시인으로만 기억해 온 것은 아닐까.
별을 좋아했던 소녀가 「서시」를 좋아했던 이유
나는 별을 좋아했다. 어릴 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했고, 별이 많이 보이는 곳에 가면 괜히 오래 하늘을 바라봤다. 그래서 윤동주의 시 가운데서도 「서시」가 유난히 좋았다. 「서시」는 특별히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단순한 문장 안에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마음이 들어 있다.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마음.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학창 시절에는 그저 ‘좋은 시’라고 생각했던 문장들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전혀 다르게 들렸다. 그 시를 쓸 당시 윤동주에게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말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의미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먹을지, 어떤 일을 할지, 어디로 여행을 갈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윤동주가 살던 시대의 청년은 자신의 이름과 언어, 신념과 행동 하나까지도 시대의 압박 속에서 고민해야 했다. 그러니 그가 자신을 돌아보며 쓴 시는 단순한 감성적인 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보내는 다짐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다시 「서시」를 떠올리니 예전처럼 예쁜 시로만 읽히지 않았다. 그 안에 있는 망설임과 두려움, 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이 보였다. 어릴 때 내가 좋아했던 별은 낭만적인 별이었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 윤동주의 별은 조금 달라졌다. 어두운 시대에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올려다본 별처럼 느껴졌다.
아름다운 시를 쓴 사람의 처참했던 삶
윤동주의 시는 이상할 정도로 맑다. 어둡고 불안한 시대를 살았는데도 그의 시에는 맑은 하늘과 별, 바람, 고향, 기억 같은 이미지가 반복된다. 그런데 그의 실제 삶을 알고 나면 그 맑음이 오히려 더 슬프게 느껴진다. 시인은 평온한 시대에 평온한 시를 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온하지 않은 시대에 평온함을 꿈꾸며 시를 썼던 사람에 가까웠다. 그의 시에는 고독과 방황, 고향 상실, 죽음에 대한 의식 등이 나타나지만 동시에 순수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도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같다. 시대는 바뀌었는데도 우리가 그의 시를 읽으며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는 단순히 일제강점기의 저항시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에게 묻게 되는 질문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나는 부끄럽지 않은가.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윤동주는 거대한 구호를 외치는 대신 자기 자신에게 계속 질문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낡지 않는다.
살아생전 시집을 출간하지 못한 시인
영화를 보고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윤동주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시집을 출간하지 못했다. 나는 당연히 윤동주가 생전에 시집을 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기념해 자신이 고른 시들을 묶어 시집을 출간하려고 했다. 직접 3부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건넸지만, 당시 검열을 우려한 주변의 만류로 출간하지 못했다.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 등이 유고를 정리했고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처음 세상에 나왔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영화가 더 먹먹했다. 시인은 시집을 내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지 못했다. 자신이 쓴 시가 어떤 사람들에게 읽힐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학교에서 그의 시를 배우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집을 읽고, 그의 시를 필사하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 헤는 밤」을 떠올린다. 시집은 살아 있을 때 나오지 못했는데 시인은 오히려 죽은 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이상하게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는 자신의 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알았다면 조금은 행복했을까. 자신이 남긴 시가 수십 년 뒤에도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짧았던 삶을 조금은 덜 안타까워했을까.
항상 윤동주 곁에 있던 송몽규
영화 《동주》를 보고 나면 윤동주만큼이나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송몽규. 영화에서는 윤동주의 친구이자 사촌 형으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윤동주의 고종사촌 형이면서 독립운동가이자 문인이었다. 두 사람은 북간도 명동촌에서 함께 성장했고, 이후 연희전문학교에서도 인연을 이어갔다. 일본 유학 시기에도 함께 있었고,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같은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 모두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 영화를 보고 나면 윤동주와 송몽규가 참 묘한 관계였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은 시를 썼고, 한 사람은 행동하려 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부끄러움과 양심을 이야기했고, 한 사람은 독립운동의 길을 적극적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둘 다 같은 시대를 견뎌야 했고, 같은 조국의 상실을 경험했고, 결국 일본 감옥에서 삶을 마쳤다. 그래서 영화 속 두 사람의 관계를 보고 있으면 ‘시를 쓰는 것과 행동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용기 있는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윤동주의 시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송몽규처럼 그의 곁에서 시대를 함께 견뎌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곁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윤동주에게는 송몽규가 그중 한 사람이었다.
윤동주가 태어난 곳은 북간도
영화를 보고 나서 또 궁금했던 것이 윤동주의 고향이었다. 윤동주는 한국에서 태어난 시인이 아니라 북간도 명동촌, 지금의 중국 지린성 지역에서 태어났다. 당시 명동촌은 조선인들이 모여 살며 교육과 민족운동의 기반을 만들었던 곳이었다. 윤동주는 그곳에서 성장했고, 용정으로 이주해 은진중학교 등을 다녔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윤동주의 시에 등장하는 ‘고향’이라는 단어가 조금 다르게 들린다. 그에게 고향은 단순히 태어난 동네 하나가 아니었을 것이다. 북간도의 명동촌, 용정, 그리고 조국을 잃어버린 시대의 기억이 모두 뒤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이 자주 나타난다. 고향은 있는데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 나라가 있지만 내 나라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사람. 언어가 있지만 그 언어로 마음껏 시를 쓰기 어려운 사람. 그런 사람이 쓴 ‘고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향과 조금 다른 무게를 갖는다. 그래서 「또 다른 고향」이나 「별 헤는 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을 위해 읽었던 시였지만, 지금 다시 읽는다면 아마 전혀 다른 문장들이 눈에 들어올 것 같다.
가슴 아픈 윤동주의 마지막
윤동주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1943년 체포된 그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에서는 그의 죽음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온다. 특히 감옥에서 약물 주사와 관련된 장면은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강한 충격을 준다. 윤동주가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이른바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었다는 증언과 관련 자료가 있지만, 구체적인 실험 내용은 여전히 신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다. 한창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던 20대 청년이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죽은 시점이 1945년이었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더 살았다면 해방을 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살았다면 자신의 시집을 직접 손에 쥐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살았다면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나는 죽음 자체보다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이라는 생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그의 시
이상하다. 윤동주는 1945년에 죽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의 시를 읽고, 학교에서 배우고, 영화로 그의 삶을 다시 만난다. 생전에 시집 한 권을 제대로 세상에 내놓지 못했던 사람이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인 중 한 명이 되었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책은 늦게 나왔지만 시는 늦지 않았다. 윤동주가 살아 있을 때는 그의 시를 읽어줄 사람이 많지 않았을지 모른다. 일제의 검열 때문에 시집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의 시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에게 도착했다. 1948년 처음 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서시」, 「자화상」, 「별 헤는 밤」 등 그의 대표작들이 실렸다. 이후 여러 차례 증보되어 오늘날까지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집으로 읽히고 있다. 그러니 윤동주가 자신의 시가 지금처럼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시가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윤동주의 시보다 윤동주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
영화를 보기 전에는 「서시」를 좋아하는 정도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윤동주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는 어떤 아이였을까. 명동촌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뛰어놀았을까. 송몽규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정지용의 시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연희전문학교에서 어떤 친구들과 어울렸을까. 그리고 내가 가장 궁금해진 것은 윤동주가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하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을 품고 시를 썼다면 그 마음은 누구를 향했던 것일까. 물론 윤동주의 삶을 단순히 한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소비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가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와 친구였으며, 어떤 가족 속에서 성장했고,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교과서 속 ‘윤동주’가 실제로 살아 있던 한 청년으로 다가올 것 같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윤동주에 관한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애를 다룬 책도 읽어보고 싶다. 그가 살았던 명동촌과 용정도 찾아보고 싶고, 송몽규와의 관계도 더 알고 싶다. 그리고 다시 「서시」를 읽어보고 싶다. 이번에는 시험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윤동주라는 사람을 알고 난 뒤에 읽어보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시에 대한 감상
영화 《동주》를 보고 나니 어릴 때 좋아했던 윤동주의 시가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별을 보면 「별 헤는 밤」이 떠올랐다. 예쁜 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별을 보면 그 시를 썼던 윤동주의 얼굴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아름다운 시를 썼지만 아름다운 시대를 살지 못했던 사람. 자신의 이름으로 시집 한 권 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사람. 그럼에도 끝까지 시를 썼던 사람. 그리고 자신의 시가 훗날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너무 일찍 떠난 사람.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윤동주의 삶이 너무 짧아서 슬펐고, 그 짧은 삶에 시대의 무게가 너무 많이 얹혀 있어서 아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한 위로도 있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시는 남았다. 그가 바라보았던 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적어 내려간 문장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문장을 읽는다. 그러니 어쩌면 윤동주는 자신이 원했던 방식으로 살아남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떠났지만 문장이 남았고, 문장이 남았기에 우리는 아직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별을 좋아했던 소녀였던 나는 그래서 윤동주의 시를 좋아했나 보다. 어쩌면 그때는 몰랐던 것 같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단순히 예쁜 별이 아니라, 어두운 시대에도 끝내 올려다볼 수 있었던 한 사람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영화 《동주》를 보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윤동주의 시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학창 시절 시험을 위해 읽었던 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알고 난 뒤, 그 사람이 남긴 문장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