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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 리뷰, 죽음 이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wowsnowflake 2026. 9. 4. 14:54

목차


    죽음 이후 마주하게 되는 일곱 번의 재판

    영화 《신과 함께》를 보았습니다. 한 소방관이 죽음을 맞이한 뒤, 저승에서 여러 재판을 받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살아 있을 때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와 잘못은 무엇이었는지를 죽음 이후에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오히려 죽은 이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저승에서 일곱 명의 신에게 재판을 받으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살아 있을 때는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행동을 하며 살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는 더 이상 핑계를 댈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이 살아온 삶만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을까?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평소에는 이런 생각을 깊이 하지 않다가 영화 속 재판을 보니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잘 살아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좋은 일도 있었겠지만 후회되는 일도 있고,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 테니까요. 영화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결국 관객에게 묻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나태지옥이라는 말이 유난히 찔렸던 이유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나태지옥이었습니다. 나태한 삶을 살았을 때 받게 되는 벌이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요. 이 장면이 유난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참 나태하고 게으르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은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우지만, 막상 하루가 지나고 나면 하려고 했던 일들을 모두 끝내지 못한 채 잠이 듭니다.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면 될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핸드폰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면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오늘도 제대로 한 것이 없네’라는 후회가 남습니다. 물론 쉬는 것도 필요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 시간을 보내고, 그 결과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이 반복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 나태지옥을 보면서 ‘만약 정말 나태지옥이 있다면 나는 그곳으로 가는 1등급 티켓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조금 웃긴 생각이지만, 그만큼 제 생활을 돌아보게 만든 장면이었습니다. 나태함은 특별히 큰 잘못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하루하루 쌓이면 결국 내 삶의 모습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을 계속 미루고, 나중에 하겠다는 말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이 장면을 보며 단순히 ‘게으르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내가 미루고 있는 일들이 결국 나에게 어떤 후회로 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을까?’였습니다. 죽음 이후에 재판을 받는다는 설정을 보고 있으면, 나도 언젠가 내 삶을 하나하나 평가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잘한 일도 있겠지만 잘못한 일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었던 순간도 있겠지만 반대로 상처를 준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계속 생각하다 보니, 이 영화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너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더 가까운 것 같았습니다.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말과 행동을 다시 고칠 수는 없고, 후회한다고 해서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의 삶을 조금씩 바꾸는 것일 겁니다. 예전에 잘못했던 일이 있다면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미안한 사람이 있다면 늦기 전에 마음을 전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었다면 오늘부터라도 조금씩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화 속 재판은 과거를 심판하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아직 바꿀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는 죽음 이후에 어떤 벌을 받게 될지보다, 지금부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완벽하게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제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하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면서 나는 무엇을 했을까

    영화를 보면서 특히 반성하게 된 부분은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던 지난날입니다. 아이에게는 “핸드폰 그만 보고 공부해”라고 말하면서, 나는 옆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면서 나는 영상이나 인터넷을 보고 있고, 아이에게 시간을 아껴 쓰라고 하면서 나는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아이와 어른은 해야 할 일이 다르고, 부모도 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싶다면 말로만 이야기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말하기 전에 나도 책을 읽고, 아이가 집중하는 시간에는 옆에서 조용히 나의 일을 해보는 것입니다. 꼭 대단한 공부를 할 필요는 없겠지요. 책을 읽어도 좋고, 글을 써도 좋고, 밀린 일을 정리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만 노력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오늘부터라도 아이들이 공부하는 옆에서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공부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엄마도 옆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교육일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부모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며 배우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번 영화를 계기로 저도 나태한 생활을 조금씩 바꿔보고 싶어졌습니다.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하루에 해야 할 일을 너무 많이 정하지 않고, 정한 일만큼은 끝내려고 노력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업보는 존재할까

    영화 속에서는 죽은 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죽음 이후에도 이런 재판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리 바람직한 삶만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잘못을 하며 살아가고, 그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한 후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 이후에 모든 사람이 똑같이 벌을 받는다면 그것도 이상할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너무 악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아무런 벌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상처를 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정말 세상은 공평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현생에서 나쁜 일을 한 사람이 죽음 이후에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피해를 입은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억울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업보라는 개념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내가 한 행동이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온다는 생각은 무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이 완전히 불공평하지만은 않다는 믿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죽음 이후의 세계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영화처럼 일곱 명의 신에게 재판을 받게 될지, 윤회를 하게 될지, 아니면 전혀 다른 모습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작은 친절이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 이후의 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동안 조금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삶

    《신과 함께》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다룬 영화이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오히려 지금 살아 있는 시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삶을 심판받는다는 설정은 무섭고 두렵지만, 아직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앞으로의 시간을 바꿀 기회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가족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해야 할 일을 미룰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시작할지는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나태지옥이 가장 마음에 걸렸고,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던 모습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전에 나부터 먼저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옆에서 책을 읽고,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오늘은 그래도 이것 하나는 해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지기는 어렵겠지요. 또다시 늦잠을 잘 수도 있고, 계획했던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매번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모습을 깨달았을 때 다시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재판은 이미 지나간 삶을 돌아보게 만들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아직 미래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인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아니라,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언젠가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조금은 덜 후회할 수 있도록 오늘을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작은 것부터 해보려고 합니다. 핸드폰을 조금 덜 보고, 책을 한 페이지라도 읽고, 아이들에게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행동하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