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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 유배지에서 발견한 바다 그리고 한 집안의 비극적인 역사

wowsnowflake 2026. 8. 28. 22:26

목차


    영화 《자산어보》를 보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아주 단순했다. 정약전이라는 사람이 흑산도로 유배를 갔고, 그곳에서 물고기와 바다 생물을 관찰해 《자산어보》라는 책을 남겼다는 정도였다. 제목에 ‘어보’라는 말이 들어가 있으니 흔히 옛날의 물고기 도감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책 한 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물고기 이야기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약전이라는 사람은 누구였는지, 왜 흑산도까지 유배를 가게 되었는지, 그의 동생 정약용은 왜 유배를 갔는지, 또 다른 형제 정약종은 왜 목숨을 잃었는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알아보다 보니 《자산어보》는 단순한 어류 기록이 아니라 조선 후기라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한 집안의 역사와 한 학자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처럼 느껴졌다. 특히 정조가 살아 있던 시기와 정조가 세상을 떠난 이후의 정치적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니, 정약전이 왜 유배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새로운 세계를 기록하게 되었는지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영화는 물고기를 기록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시대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뒤흔들었고 그 인간은 그 속에서 무엇을 기록으로 남겼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약전을 알기 위해서는 정약용보다 먼저 ‘정약전의 가족’을 알아야 했다

    정약전의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아마 정약용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집안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이야기가 있다. 정약전과 정약용, 그리고 정약종은 형제였고, 이들은 조선 후기 새로운 학문과 서학, 천주교가 조선 사회에 들어오던 격변기를 직접 통과했다. 정약전 역시 서양 학문과 천주교에 관심을 가졌고, 정약용 역시 천주교와 관련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형제 중 정약종은 천주교 신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들이었지만 한 사람은 유배지에서 바다를 연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유배지에서 나라를 고민했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가족의 운명이 갈라지는 과정을 알고 나면 영화 속 정약전의 모습이 단순한 ‘유배 간 학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가 흑산도에서 바라보았던 바다는 어쩌면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육지에는 자신이 속했던 정치와 가족, 사상과 박해가 있었지만 흑산도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자산어보》를 보기 전 정약전의 가족사를 조금 알아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정약전이라는 한 사람의 삶만 떼어놓고 보면 유배와 물고기 이야기지만, 가족 전체의 역사를 놓고 보면 그것은 조선 후기의 정치와 종교가 한 집안을 어떻게 갈라놓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세 형제의 엇갈린 운명

    정약전의 형제 이야기를 찾아보다 보면 특히 세 사람의 삶이 눈에 들어온다. 정약전은 1801년 신유사옥으로 유배되어 결국 흑산도에서 생을 마쳤고, 그곳에서 《자산어보》를 남겼다. 정약용 역시 같은 사건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지만 오랜 유배 생활 속에서 엄청난 양의 저술을 남겼고 훗날 조선을 대표하는 실학자로 기억된다. 그리고 정약종은 형제 중에서도 천주교 신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인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처형되었다. 그래서 이 세 형제를 나란히 놓고 보면 정말 묘한 생각이 든다. 같은 집안, 같은 시대, 같은 정치적 격변을 겪었는데도 각자의 마지막 장면은 전혀 달랐다. 정약종에게는 죽음이 찾아왔고, 정약전에게는 흑산도의 긴 유배 생활이 찾아왔으며, 정약용에게는 유배지에서 학문을 계속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삶뿐 아니라 그들이 남긴 기록이다. 정약용의 수많은 저술과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200년 전 그들의 생각과 삶을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점이 영화 《자산어보》를 단순한 시대극 이상의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역사는 결국 누군가 살아낸 시간이고, 기록은 그 시간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조가 아꼈으니 괜찮았던 것 아닐까?”

    영화를 보고 정약용과 정약전의 이야기를 찾아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조라는 인물이 궁금해진다. 정약용은 정조가 아꼈던 인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정조의 여러 사업과 개혁에 참여했다. 그래서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다면 정조가 살아 있을 때는 이 형제들이 어느 정도 보호받았던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에는 어느 정도 역사적 맥락이 있지만, 정조가 형제들의 목숨을 완전히 보장해준 것처럼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정조가 살아 있던 동안에는 정약용과 같은 인물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었지만, 1800년 정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정치적 환경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이듬해인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천주교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었고,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도 그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했다. 정약종은 결국 목숨을 잃었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의 길에 올랐다. 그래서 정조라는 인물을 알고 보면 영화의 배경이 더욱 선명해진다. 정조가 존재했던 시대에는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정조가 사라진 뒤에는 같은 사람들의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분위기 자체를 바꾸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는 단순히 죄를 지어 귀양을 간 사건이 아니라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 종교의 충돌이 한 개인에게 남긴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배경을 알고 영화를 보면 흑산도에서 바라보는 정약전의 바다가 훨씬 쓸쓸하게 느껴진다.

    집 근처의 ‘절두산’으로 다시 보는 영화 속 천주교 박해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강하게 떠올랐던 장소가 있다. 바로 집 근처에 있는 절두산순교성지다. 평소에는 그냥 한강변에 있는 역사적인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자산어보》를 보고 정약전 가족의 이야기를 찾아보다 보니 그곳의 이름이 새롭게 다가왔다. 절두산은 천주교 박해의 역사와 깊이 연결된 장소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머리가 잘렸다는 의미의 ‘절두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약전 가족이 겪은 1801년 신유박해와 절두산의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인 1866년 병인박해를 같은 사건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시간적으로도 차이가 있고 박해의 국면도 다르다. 하지만 둘은 모두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라는 큰 역사적 흐름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자산어보》를 보면서 절두산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정약전 가족이 겪는 박해가 단순히 영화 속 설정이 아니라 실제 조선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역사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지금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는 서울의 한강변에도 이런 역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다가온다. 역사는 멀리 떨어진 박물관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동네와 길, 강변에도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뒤에는 절두산순교성지를 직접 찾아가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한 편이 과거의 장소와 현재의 장소를 연결해준 셈이다.

    흑산도로 쫓겨난 학자가 만든 바다의 백과사전

    정약전은 1801년 신유사옥으로 유배되어 흑산도에 머물렀고, 결국 그곳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1816년에 생을 마쳤다. 그런데 그 긴 유배 생활 속에서 정약전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흑산도는 정치적으로는 유배지였지만, 학자 정약전의 눈에는 이전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연구 대상이 가득한 장소였던 것이다. 그는 흑산도 주변의 수산생물을 직접 살펴보고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련 문헌도 찾아보면서 내용을 정리했다. 그렇게 1814년에 완성된 것이 《자산어보》다. 그런데 《자산어보》를 단순히 ‘물고기 책’이라고 부르기에는 기록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 물고기뿐만 아니라 패류, 해조류, 해금과 해수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을 다루었고, 이름과 형태뿐 아니라 습성이나 맛, 이용법 등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책상에 앉아 기존 문헌만 베껴 쓴 것이 아니라 실제 흑산도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정약전은 섬사람들의 지식을 듣고 그중 믿을 만한 사람과 함께 연구하며 내용을 정리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지역 주민의 생활 지식을 연구자의 관찰과 결합한 현장 조사에 가까운 모습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시 《자산어보》를 정약전의 실증적 학문 태도를 보여주는 책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영화에서 정약전이 물고기를 바라보는 장면은 단순히 유배 생활의 소소한 취미가 아니다. 자신이 갇힌 섬을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바꾸어버린 한 학자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역시 기록의 민족

    《자산어보》를 보면서 또 하나 떠오른 것은 우리 선조들이 정말 많은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조선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의궤》 같은 기록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왕의 일과 국가의 중요한 사건을 기록하고, 왕실에서 행사가 열리면 그 과정과 비용, 참여 인원, 사용된 물품 등을 남겼다. 누군가는 왕의 말을 받아 적었고, 누군가는 행사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으며, 누군가는 특정 분야의 지식을 책으로 정리했다. 그렇게 쌓인 기록들이 오늘날 우리가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자산어보》 역시 이런 조선의 기록문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바라보면 더욱 재미있다. 왕이나 관청이 명령해서 만든 기록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배지에서 한 사람이 주변의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한 책도 시간이 흐르면 한 시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어떤 물고기가 잡히는지,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부르는지, 생김새는 어떠한지, 어떻게 이용하는지 등을 세밀하게 적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물고기의 이름과 생태,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 중 일부를 《자산어보》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이유다. 사진도 동영상도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한 사람이 직접 보고 듣고 기록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그리고 그 기록이 200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는 것도 놀랍다. 결국 기록이란 현재를 위해 쓰는 것 같지만, 때로는 미래의 사람들이 과거를 만나는 가장 오래된 통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산어보》는 우리 선조들의 기록문화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흑백화면으로 바라본 흑산도의 풍경

    영화 《자산어보》에서 내가 좋아했던 또 하나의 요소는 흑백 화면이었다. 사실 흑산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푸른 바다와 섬의 아름다운 풍경인데, 영화는 그 풍경을 컬러로 보여주지 않는다. 처음에는 조금 의외였지만 영화를 보다 보니 오히려 흑백이라서 좋았다. 색이 빠진 화면 속에서 인물의 표정과 풍경의 질감이 더 또렷하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영화 전체가 마치 아주 오래된 기록을 펼쳐보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누군가 오래된 책을 한 권 꺼내어 먼지를 털고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 그 안에서 과거의 사람들이 걸어 나오는 듯한 느낌이랄까. 특히 정약전이 흑산도의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아름답다는 감정보다 고립과 쓸쓸함,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사람의 시선이 먼저 느껴진다. 컬러 영화였다면 바다의 푸른빛이나 섬의 초록빛에 눈이 먼저 갔을 텐데, 흑백 화면에서는 인물과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의 흑백은 단순히 ‘옛날 영화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정약전의 이야기를 하나의 기억처럼 느끼게 만드는 장치였던 것 같다. 마치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이 200년 전 흑산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누군가 오래된 기록에서 꺼내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고, 흑백의 바다와 사람들의 얼굴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화려한 장면보다 정약전이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던 모습이 오래 남았던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유배지에서도 멈추지 않은 배움

    《자산어보》라는 제목만 보면 영화의 중심에는 당연히 물고기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물고기보다 정약전이라는 사람이 더 궁금해졌다. 그는 왜 그렇게까지 기록을 했을까. 모든 것을 잃고 유배지에 도착한 사람이 왜 하필 주변의 물고기와 해산물을 자세히 관찰했을까.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정치에서 밀려나고 가족과도 떨어지고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쫓겨난 사람이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기록을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산도는 처음에는 정약전에게 감옥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섬사람들을 만나고 바다를 관찰하고 생물을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산어보》는 유배지에서 쓴 책이 아니라 유배지에서 다시 살아가기 위해 세상을 공부한 사람의 기록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기록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정약전이 당시에는 알 수 없었겠지만, 자신이 남긴 기록을 200년 뒤 사람들이 읽고 영화까지 만들어 그의 삶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그의 삶을 알고 흑산도의 바다를 상상할 수 있는 것도 결국 그가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는 ‘정약전이 물고기를 참 꼼꼼하게 기록했구나’라는 생각보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낸 시간을 기록함으로써 시대를 넘어 살아남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더 오래 남았다.

     

    자산어보의 원문이 궁금해지는 영화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오히려 《자산어보》 원문이 궁금해졌다. 정약전이 실제로 흑산도에서 어떤 생물을 보았고,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불렀으며, 당시 사람들은 그 생물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직접 읽어보고 싶어졌다. 실제 《자산어보》는 1814년에 완성된 3권 1책의 필사본으로, 인류·무인류·개류·잡류 등으로 나누어 해양 생물을 분류했고 모두 55개 항목을 다루었다. 그런데 단순히 생물의 이름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형태와 습성, 맛, 이용법 등을 기록했고 우리나라와 중국의 문헌도 참고하면서 실제로 보고 들은 내용을 함께 기록했다. 지금의 과학적 분류법과 완전히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당시 시대적 조건을 생각하면 직접 관찰하고 분류하고 비교했다는 점 자체가 놀랍다. 특히 정약전이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중 믿을 만한 사람과 함께 연구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책상 위의 지식만으로 세상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식까지 기록 속으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산어보》는 오래된 어류도감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하다. 그것은 한 시대의 바다와 사람들의 생활, 지역의 언어와 지식까지 담아놓은 생활의 기록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난 뒤 책이 궁금해지는 영화라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자산어보》가 나에게는 그런 영화였다. 영화를 통해 정약전을 만났고, 정약전을 따라가다 보니 정약용과 정약종을 알게 되었고, 형제들을 따라가다 보니 정조와 신유박해를 만나게 되었고, 다시 천주교 박해를 따라가다 보니 절두산이라는 장소까지 이어졌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삶을 넘어 한 시대 전체로 이어지는 경험, 그것이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남은 감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