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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말이 다시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이유
최근 한국에서는 유명 연예인의 가족사를 둘러싼 친일 논란이 다시 큰 관심을 받았다. 평소 방송에서 집안의 부와 재력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던 모습들이 다시 조명되고, 그 과정에서 조상의 친일 행적까지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모습을 보았다. 대대로 의사 집안이라는 이야기, 집에 상당한 현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이야기, 냉장고가 여러 대라는 이야기처럼 남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부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 부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물론 후손이 조상의 행동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집안의 자녀인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단순히 '친일파의 후손이라서 잘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나라를 빼앗겼던 시대에 누군가는 가족과 재산, 자신의 미래까지 포기하면서 독립을 위해 싸웠는데, 누군가는 일본의 편에 서서 자신의 삶을 지키고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어져 대대로 풍족한 삶을 살게 되었다면,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내놓았던 사람들의 후손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흔히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잘 먹고 잘산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하다. 실제로는 3대가 아니라 대대손손 그 부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단순히 잘 먹고 잘사는 정도를 넘어 엄청난 부를 누리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 《하얼빈》을 보기 전부터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라를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영화 《하얼빈》은 우리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이야기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는 사실은 역사책을 통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영화에서 어떤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니 내가 알고 있던 것은 결과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중근과 독립운동가들이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두려움, 희생을 감당해야 했는지는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나라를 잃는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아침에 일어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고, 인터넷을 사용하고, 여행을 계획하고,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살아간다. 내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내가 사는 나라의 언어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쓸 수 있다. 이런 일상이 너무 당연해서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게 되찾고 싶었던 꿈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하얼빈》을 보면서 바로 그 부분이 마음에 남았다. 나라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국기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가는 땅에서 내 언어와 이름,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잃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평범한 삶을 포기해야 했다. 가족과 함께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도, 자신의 미래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도 내려놓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안중근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화에서 안중근의 모습이 중심에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결국 안중근 한 사람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책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몇 줄로만 배웠지만 실제 그들의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가족을 남겨두고 떠났을 것이고, 누군가는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조차 역사에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얻을 수 있는 미래였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특히 영화 속 안중근을 보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독립운동가를 이야기할 때 너무 쉽게 영웅이라고 부르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살고 싶었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오래 함께하고 싶었을 것이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보다 더 큰 것을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하얼빈》을 단순한 역사 영화로만 보고 싶지 않았다. 과거의 영웅을 기념하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지금 내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내가 오늘 아무 걱정 없이 아이들과 밥을 먹고,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과거를 제대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조금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어쩌면 비슷한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후손에게 조상의 죄를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기억해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테니까. 특히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반드시 풍족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재산과 삶을 포기한 사람들의 후손은 어려운 삶을 이어가기도 했는데, 반대로 일제강점기에 부와 지위를 쌓은 사람들의 후손이 그 부를 그대로 물려받았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친일 논란이 생길 때마다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것 같다. 과거는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조상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후손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과거의 잘못을 미화하거나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누군가의 가문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기억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것 역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8월에 다시 생각해보는 광복의 의미
8월은 광복절이 있는 달이다. 평소에는 달력에 적힌 하나의 공휴일처럼 지나갈 때도 있지만 《하얼빈》을 보고 나니 올해 8월의 광복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지금 내가 이렇게 평안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여행을 계획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글로 쓸 수 있는 일상. 너무 평범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누군가가 지켜낸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린 사람들, 가족을 남겨두고 독립운동에 나선 사람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얼빈》을 보고 난 뒤에는 안중근 의사에게 감사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중근 한 사람뿐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분들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켜낸 나라에서 우리는 너무나 평범하고 자유로운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8월에는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내가 오늘 아무 걱정 없이 보내고 있는 이 하루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를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 《하얼빈》은 거창한 애국심을 이야기하기보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나라를 잃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희생 덕분에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감사가 아닐까 싶다. 8월의 어느 날, 《하얼빈》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내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