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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 본성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 놓이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 같다. 흔히 '체력이 성격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나 역시 이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평소에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부드럽게 이야기하려고 해도 몸이 너무 피곤한 날에는 나도 모르게 예민해지고, 별것 아닌 일에도 뾰족한 말을 하게 된다. 아이가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행동을 했는데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더 크게 화를 내거나 몰아붙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평소에는 여유라는 것이 나를 감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체력이 떨어지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면 숨겨져 있던 감정이나 본성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영화를 보면서 계속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 영화에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지진으로 서울 전체가 무너지고, 대부분의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가운데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가 남는다.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집이면서 동시에 생존을 위한 마지막 공간이 된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에서 누군가는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가지지 못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영화는 바로 그 순간부터 사람들의 선택을 보여준다. 평소라면 쉽게 생각하지 않았을 문제들이 생존과 연결되면서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누구를 받아들일 것인지, 누구를 내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있는 것을 어디까지 나눌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지진이라는 재난을 보여주는 영화라기보다 재난 앞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무너진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영화 속 서울에는 큰 지진이 발생하고 도시 대부분이 무너진다. 그런데 황궁아파트만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들이 가진 마지막 공간을 지키기 위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고, 주민 대표로 영탁이 나서면서 아파트의 질서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두가 같은 피해자처럼 보인다. 집을 잃었고, 먹을 것이 부족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파트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집도 사라졌고 당장 몸을 피할 곳도 없는 사람들이니 아파트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자신들만의 이유가 있다. 먹을 것도 충분하지 않고 언제 다시 재난이 닥칠지도 모르는데 외부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인다면 주민들 역시 위험해질 수 있다. 여기에서부터 영화가 흥미로워진다. 누구의 말이 옳다고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아파트를 보호해야 하고,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살아남기 위해 아파트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 점점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가 다시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낸다. 영화 속 인물들은 계속해서 여러 위기를 맞게 되고, 그때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아마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도 내 가족의 생존이 걸린 순간에는 생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아파트에 있었다면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영화가 불편하면서도 계속 생각나는 이유는 등장인물을 쉽게 비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에 놓여 있지 않은 우리가 밖에서 그들의 행동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도 많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그 아파트 안에 있고, 먹을 것이 떨어지고,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을 지켜야 하고, 언제 다시 위험한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나 자신도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계속 '나는 어떤 캐릭터를 대변하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에는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극한의 상황에서도 똑같이 행동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기적인 마음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족을 지키고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문제는 그 본능이 다른 사람의 생존을 빼앗는 순간일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바로 그 경계가 어디인지 계속 묻는 영화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우리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었는데 어느 순간 '우리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잔인한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영화 속 상황이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제로 이런 재난이 일어난다면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에는 사회적인 규칙과 도덕, 다른 사람의 시선이 우리 행동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생존만 남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단순히 등장인물의 행동을 평가하기보다 '나는 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될까'를 생각하게 된다.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재난 대책을 세운다
나는 이런 재난 영화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속으로 나만의 재난 대책을 세우게 된다.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가족은 어떻게 챙겨야 할까, 무엇을 준비해두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실제 재난은 영화처럼 극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상상한 대로 움직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가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집에서 편하게 물을 마시고,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고, 가족과 함께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평범해 보이지만 상당히 많은 것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우리의 일상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면서 재난 자체보다 재난 이후의 사람들을 더 유심히 보게 됐다. 누군가는 공동체를 지키려고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고 한다. 결국 위기가 닥쳤을 때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평소에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는지와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나는 정말 저런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오래 남았다. 정답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주변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상하게 현실의 주변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꼭 지진이 일어나야만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평소에도 각자의 울타리를 만들고 살아간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고, 내가 가진 것을 지키려고 한다. 물론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니까. 하지만 가끔은 내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닌 척하면서 내 이익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구는 모습들.'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모습들이 주변에서도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다. 아주 작은 일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나도 모르게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불편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며 '저 사람은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생각하다가도 결국 그 질문이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를까?' 아마 나도 극한의 상황에 놓이면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단순한 재난 영화로 끝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거대한 재난이 없어도 수많은 작은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과 가족, 자신의 이익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중요한 것은 그 울타리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그 밖에 있는 사람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라는 질문이 계속 남았다. 그리고 아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정말 극한의 순간이 왔을 때 비로소 알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