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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공부하고 다시 본 《안시성》, 이 땅을 지켜낸 진짜 주인들의 이야기

wowsnowflake 2026. 8. 9. 03:24

목차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비로소 교과서를 통해 본격적인 '한국사'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아이 책상 위에 놓인 역사 교과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제 학창 시절의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저에게 역사라는 과목은 그저 좋은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해 무의미하게 연도를 달달 외우고, 복잡한 왕의 이름과 주요 사건들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암기해야 했던 지루하고 딱딱한 수험 과목에 불과했습니다. 당연히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 수많은 지식들이 썰물처럼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씻겨 내려갔지요. 누군가 TV나 모임에서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꺼낼 때면, 아는 것이 없어 그저 입을 다문 채 어색한 미소만 지어야 했던 부끄러움과 아쉬움이 늘 가슴 한구석에 묵직한 응어리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 더 이상 아이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무작정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교재를 펼쳐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격증을 준비하며 밤을 새우는 동안 정말 수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단편적인 정보로 내 머릿속에 조각조각 덧없이 흩어져 있던 역사적 사건들이, 삶의 경험과 때가 묻은 어른의 깊은 시선과 만나자 마침내 하나의 커다란 퍼즐처럼 완벽하고 아름답게 맞춰지는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다시 공부하는 역사는 단순한 암기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인물들의 선택과 시대의 맥락을 깊이 이해하게 되니 공부 자체가 그 어떤 소설보다 흥미진진했지만, 동시에 억울하게 스러져간 이 땅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분노와 묵직한 탄식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수없이 짓밟혀도 도망치지 않았던 이 땅의 삶들

    역사를 깊이 있게 공부하면서 가장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던 대목은 지리적 위치로 인해 단 한 순간도 편할 날이 없었던 '외세의 무자비하고 참혹했던 침략 역사'였습니다. 고구려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수나라와 당나라, 고려 시대를 피로 물들였던 거란과 몽골의 침략, 그리고 조선 시대를 도탄에 빠뜨렸던 왜란과 호란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소중한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가족을 무참히 짓밟혀야 했던 이 땅의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웠을까요. 그 고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턱 막혀왔습니다. 비록 지금의 우리도 남과 북이 갈라진 채 휴전이라는 불안한 평화를 품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 시절의 민초들이 매일같이 견뎌내야 했을 지옥 같은 전쟁의 나날들에 비하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절절하게 감사한 것인지 새삼 뼈저려졌습니다.

    영화 《안시성》은 바로 그 처절하고도 장엄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스크린 위에 생생하게 부활시켜 우리로 하여금 직면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당나라 20만 대군의 파도 같은 공격에 맞서 싸우는 안시성 전투를 다루고 있습니다. 화려한 CG나 웅장한 공성전 액션도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제 눈과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신분제라는 거대한 사회적 벽에 갇힌 채 나라에서 "나가서 싸우라" 명하면 군말 없이 흙바닥과 전장으로 내몰려야 했던 이름 없는 백성들의 고단하고 서글픈 삶이었습니다. 국가로부터 그럴듯한 무기나 단단한 갑옷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던 그 시대에, 백성들은 각자 집에서 쓰던 농기구와 낫, 괭이를 손에 쥐고 목숨을 걸고 전선으로 향해야만 했습니다.

     

    승려도, 아녀자도 무기를 들었던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안시성》이, 그리고 우리가 걸어온 역사가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웅장한 감동을 주는 진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패색이 짙고 승산이 없어 보이는 처절한 싸움 앞에서도 결코 도망치거나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마땅히 지켜야 할 위정자들과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안위만을 챙기며 팽개치고 달아난 빈자리를 끝까지 채운 것은 언제나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은 민초들이었습니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았던 아녀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돌을 날랐고,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엄격한 계율을 평생 지켜온 승려들마저 이 땅의 중생들이 도륙당하는 비극을 차마 눈 감을 수 없어 스스로 칼을 쥐고 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영화 속 안시성의 성벽을 지켜내기 위해 당나라군의 화살 세례 속에서도 흙을 나르고 피를 흘리며 스러져가던 백성들의 모습은, 제가 한국사를 공부하며 책장 너머로 마음을 졸이며 느꼈던 그 뜨거운 피와 눈물의 완벽한 실체였습니다.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안시성을 지킬 수 있다!"

    영화 속 양만춘 장군과 성민들이 외치는 결의처럼, 그 어떤 국가적 보상이나 명예도 바라지 않고 오직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내 아이, 그리고 우리가 뿌리 내리고 살아온 이 소중한 땅을 지켜내기 위해 흙먼지와 핏물을 뒤집어써야 했던 조상들의 무조건적인 희생.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이 켜켜이 쌓이고 또 쌓여서 마침내 지금 내가 안전하게 딛고 서 있는 이 나라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엄숙한 숙연함과 고마움이 밀려왔습니다.

     

    조상들이 피로 지켜낸 나라,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영화가 모두 끝나고 컴컴한 상영관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가슴을 채웠던 감동의 여운 뒤로 알 수 없는 씁쓸함과 무거운 걱정이 먹구름처럼 밀려왔습니다. 요즘 매일같이 뉴스를 장식하는 암담하고 이기적인 정치판과 사회적 갈등을 보고 있으면, "과연 우리는 조상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이 소중한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는가?" 하는 무거운 질문이 스스로에게 던져집니다. 오직 자신들의 권력과 안위,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서로 편을 가르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위정자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옛날 무기도 제대로 없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흔쾌히 목숨을 바쳤던 이름 모를 백성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마저 듭니다.

    우리가 조상들의 피 어린 희생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바쁜 일상 속에서 계속해서 역사를 배우고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선조들이 목숨과 바꿔 써 내려간 이 땅의 가치를 헛되이 무너뜨리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게 물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영화 《안시성》은 단순히 눈이 즐거운 전쟁 블록버스터를 넘어, 역사를 공부하며 가슴속에 품었던 민초들에 대한 부채감과 감사함을 다시금 강렬하게 일깨워준, 잊고 있던 '국가와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묵직하게 되묻는 뜻깊은 영화였습니다. 이제 곧 5학년이 되어 교과서로 첫 역사를 만나게 될 제 아이와 손을 잡고, 조만간 꼭 다시 한번 꺼내보고 싶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