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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연기가 더 반가운 배우, 조정석
한국영화 〈파일럿〉은 오랜만에 조정석이라는 배우를 제대로 볼 수 있어서 선택하게 된 영화다. 조정석은 원래 뮤지컬 무대에서 오래 활동했던 배우로 알고 있었는데,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대중적인 배우로 자리 잡았다. 특히 나에게 조정석이라는 이름을 처음 강하게 각인시킨 작품은 역시 〈건축학개론〉의 납득이였다. 당시에는 조정석이라는 배우 자체보다 '납득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강렬해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장면과 말투를 기억할 정도였다. 코믹한 캐릭터를 너무 자연스럽게 소화해서 그 이후로도 조정석이 나오는 작품을 보면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그런데 조정석은 단순히 웃기는 역할만 잘하는 배우는 아니다. 경호원 같은 묵직한 역할도 맡았고, 앵커처럼 냉정하고 진지한 캐릭터도 연기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계속 넓혀왔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조정석이 진지한 연기를 할 때보다 이렇게 조금은 망가지고 능청스럽게 웃음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때 가장 빛나는 배우가 아닌가 싶다. 아마도 뮤지컬 배우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몸을 쓰는 연기와 표정, 목소리, 노래까지 다양하게 활용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화면 안에서 움직이는 것만 봐도 묘하게 재미가 있다. 그런 조정석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한 영화가 바로 〈파일럿〉이었다.
남자가 여장을 한다는 설정, 처음에는 너무 말이 안 됐다
〈파일럿〉의 가장 큰 설정은 한 남자가 동생 대신 여장을 하고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는 나도 조금 황당했다.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못할 수가 있나 싶었다. 특히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넘어간다는 설정은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얼굴 생김새부터 목소리, 체격, 행동 하나하나까지 완전히 다른데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아무래도 억지스러운 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기 시작하니 의외로 조정석의 모습 때문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현실에서라면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영화는 그 설정을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름대로 여러 장치를 만들어 놓는다. 특히 조정석이 여장을 하고 여성의 모습을 흉내 내는 과정이 단순히 가발 하나 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표정과 말투, 걸음걸이, 행동까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우스꽝스럽던 모습이 점점 그럴듯해지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조정석이 가진 특유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가 더해지면서 '이게 정말 가능한가?'라는 생각보다 '그래, 영화니까 일단 웃어보자'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결국 이 영화의 설정은 현실적인 개연성보다는 배우의 연기와 코미디를 통해 관객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식에 가까웠고, 나는 생각보다 그 방법이 꽤 잘 통했다고 느꼈다.
조정석의 여장,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려서 웃겼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역시 조정석의 여장이다. 사실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흔하지만, 어설프게 여장한 모습 자체를 웃음의 소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파일럿〉의 조정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히 '남자가 여자 옷을 입었다'는 느낌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여성으로 보이기 위해 표정과 말투를 바꾸고, 행동을 조심스럽게 따라 하면서 점점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에 적응해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특히 남성일 때의 조정석과 여장을 했을 때의 조정석 사이에 묘한 차이가 생기면서 같은 배우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조정석이네' 싶은 순간도 있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 어색함 자체가 코미디가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걸 누가 못 알아보지?'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그래, 저 정도면 모를 수도 있겠는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게 배우의 힘인 것 같다.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여성이 된 것은 아니지만, 관객이 영화의 세계관 안에서만큼은 그 설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조정석은 원래 몸을 쓰는 코미디를 굉장히 자연스럽게 하는 배우라서 작은 행동 하나에도 웃음이 생긴다. 억지로 웃기려고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연기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조정석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진지한 배우가 코미디를 하는 것과 코미디 감각이 있는 배우가 진지한 장면을 소화하는 것은 조금 다른데, 조정석은 후자에 가까운 배우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파일럿〉처럼 처음부터 코미디를 전제로 한 작품에서 특히 그의 장점이 잘 살아난 것 같다.
납득이에서 시작해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준 배우
조정석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바로 〈건축학개론〉의 납득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해 특유의 말투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당시 조정석이라는 배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나 역시 조정석 하면 가장 먼저 납득이가 떠오를 정도로 그 캐릭터가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납득이로 유명해진 이후 조정석이 계속 코믹한 역할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호원처럼 액션과 긴장감을 요구하는 역할도 맡았고, 앵커처럼 전문직 캐릭터도 연기하면서 배우로서의 폭을 보여줬다. 특히 조정석은 웃기는 역할을 잘한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오히려 진지한 역할을 맡았을 때 더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한 가지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온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개인적인 취향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역시 조정석이 코믹한 연기를 할 때 가장 매력적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장면에서 특유의 매력이 살아난다. 〈파일럿〉에서도 바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화 자체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가진 코미디 감각이 작품을 끝까지 끌고 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여기에 뮤지컬 배우 출신이라는 장점까지 더해진다. 노래와 춤, 연기까지 모두 가능한 배우라는 점은 확실히 흔한 장점이 아니다. 배우로서 끼가 많다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가수 거미와 함께 만들어가는 지금의 모습도 보기 좋다
배우로서의 조정석을 좋아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뿐 아니라 배우 개인의 삶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조정석은 가수 거미와 결혼했고 두 사람은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연예인 부부의 경우 워낙 많은 이야기가 따라붙는 경우가 있는데, 두 사람은 비교적 차분하게 각자의 활동을 이어가면서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특히 조정석은 배우로서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도 특별히 한 가지 이미지에만 갇히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뮤지컬 배우로 시작해 영화배우와 드라마 배우로 자리 잡았고, 코미디와 멜로, 액션과 진지한 역할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결국 오래 활동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조정석에게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단순히 한 작품이 크게 성공해서 유명해진 배우라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확실히 알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는 배우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큰 탈 없이 오랫동안 활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배우라는 직업이 워낙 변화가 많고 작품 하나의 결과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지만, 조정석은 이미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다. 특히 코믹 연기에서는 대체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분위기가 있다. 〈파일럿〉 역시 그런 조정석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현실적으로 따지면 이상하지만, 웃으며 보기에는 괜찮았던 영화
〈파일럿〉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기대하고 보면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남자가 여장을 하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핵심 설정부터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저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나 역시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런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작품은 처음부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영화라기보다는 조정석이라는 배우의 코믹한 매력을 최대한 활용해 관객에게 웃음을 주려는 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목적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완벽하게 논리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조정석이 여장을 하고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설정에 대한 의문을 내려놓고 그냥 웃게 된다. 무엇보다 억지로 웃기려고 하는 장면보다는 조정석의 표정이나 행동 자체에서 웃음이 나오는 순간들이 많았다는 점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꼭 완벽한 개연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야기가 탄탄하면 더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설정이라도 영화 안에서 관객이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영화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파일럿〉은 '말도 안 되는 설정인데 이상하게 납득하게 되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있었다. 예전에 좋아했던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는 점도 반가웠다. 결국 이 영화를 보고 남은 생각은 하나다. 조정석은 역시 진지한 모습도 좋지만, 이렇게 망가질 때 가장 빛나는 배우가 아닐까. 가볍게 웃으면서 보기 좋은 한국 코미디 영화를 찾는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