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요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숨조차 편히 쉬기 힘들 만큼 불타는 중이다. 120년 만에 찾아왔다는 섭씨 40도의 기록적인 더위 앞에서 매일이 견디는 삶의 연속이다. 사람의 정상 체온조래 까마득히 넘어선 뜨거운 공기 속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과연 인간이 이런 환경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본능적이고도 섬뜩한 생존의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에어컨을 당장이라도 끄고 실내외 온도 차를 줄여봐야 하는 걸까 싶다가도, 리모컨을 놓는 순간 밀려오는 무시무시한 열기에 굴복하고 만다. 이건 단순히 피곤하고 짜증 나는 여름철 무더위 수준이 아니라, 인류를 서서히 말려 죽이는 살인적인 자연재해에 가깝다.
진짜 무서운 건 화면 속 기괴한 괴물도, 서늘한 분위기의 귀신도 아닌 바로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자연' 그 자체였다. 거대하고 무자비한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 구축해 놓은 문명과 정교한 시스템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우리는 그저 이 압도적인 폭염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력감을 경험한다. 이것이 수십 년간 누적되어 온 지구 온난화의 본격적인 경고인지, 아니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기상이변인지조차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그저 올여름만큼은 후대의 기억 속에 '다행히 어쩌다 한 번 이상했던 해'로만 남기를, 이 무더위가 끝없이 이어지는 기후 변화의 시발점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신파라며 외면했던 화면들이 현실의 공포로 다가오다
솔직히 나는 그동안 재난 영화라는 장르 자체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거대한 자연의 역린을 건드린 인간들이 무력하게 도망치고, 그 와중에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는 인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인위적으로 감정을 쥐어짜 내는 신파극에 깊은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도 꼭 등장하는 가족애나 억지스러운 로맨스, 그리고 전형적인 영웅주의 같은 연출들은 영화의 몰입감을 방해했고, 늘 상업 영화의 뻔한 공식처럼 느껴져 외면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40도가 넘는 살벌한 폭염 속에서 문득 다시 떠올린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는 예전과 전혀 다른 서늘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진부하다고 느꼈던 영화 속 신파나 인물 간의 신파적 서사는 여전히 화면 위에 존재하지만, 그 뒤를 묵직하게 받치고 있는 '기후 재앙'이라는 뼈아픈 경고만큼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나 가상의 판타지로 치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대재앙이 마침내 창문 밖 현실의 풍경과 겹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빙하기라는 역설, 그리고 스크린 밖의 현실
영화 <투모로우>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빙하가 급격히 녹아내리고, 이로 인해 대대적인 바닷물의 해류 변화가 일어나며 지구 전체에 돌연 소름 끼치는 빙하기가 찾아오는 역설적인 상황을 다룬다. 급격한 기후 변화의 위험성을 끊임없이 경고하는 학자들의 목소리를 경제 논리와 정치적 계산으로 가볍게 무시하던 지도자들, 그리고 그 과오의 대가로 순식간에 거대한 쓰나미와 극심한 한파에 삼켜지는 뉴욕 도심의 모습은 소름 돋을 정도의 현실감을 선사한다. 과거엔 그저 "CG 연출이 대단하네", "시원한 볼거리다" 정도로 가볍게 넘겼던 장면들이, 체온을 뛰어넘는 현실의 폭염과 실시간으로 교차되면서 기괴하고 섬뜩한 공포로 다가온다. 우리가 에어컨 바람 아래 누워 당장의 무더위를 임시방편으로 피하며 안도하는 순간에도, 지구의 기후 시스템은 무자비하게 붕괴의 태엽을 감고 있다. 문을 열고 밖을 나서는 순간 살갗을 찌르는 현실의 열기는 스크린 속을 몰아치던 초대형 쓰나미보다 훨씬 더 실체적이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온몸에 와닿는다.
일론 머스크의 집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재난 영화를 그저 한여름의 답답함을 잊게 해주는 시원한 볼거리나 가벼운 오락거리로 소비했다면, 이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지구에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이 닥쳐왔을 때, 과연 우리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한때는 뜬구름 잡는 소리이자 기인(奇人)의 유별난 기행으로만 보였던 일론 머스크의 행보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왜 그렇게 수많은 비난과 회의적인 시선 속에서도 화성 이주에 집착하고 우주 탐사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지, 이제야 비로소 어렴풋이 그 절박함을 알 것 같다. 어쩌면 그는 이미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다가오는 지구의 종말 시계를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대로 가다간 정말 인류가 지구에서 더 이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가 현실로 다가온다. 자연은 인간의 자비나 사정을 절대 봐주지 않으며, 우리가 기술력을 과신하며 방심하는 사이 감당할 수 없는 한계점(Tipping Point)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올 것이다.
맺으며: 뜨거운 경고를 잊지 않기를
<투모로우>의 인상적인 엔딩, 모든 재앙이 한차례 쓸고 지나간 후 우주선에서 조용히 바라본 지구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맑고 평화롭다. 인간이 구축해 놓은 찬란하고도 오만한 문명이 얼어붙어 멈춰 선 뒤에야, 비로소 지구는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본래의 안정을 찾은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 장면은 인류에게 있어서는 절망적인 비극이지만,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정 작용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을 남긴다.
영화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생존 의지와 가족애를 조명하지만, 40도 폭염의 한복판에 서 있는 나에게 가장 강력한 잔상으로 남은 것은 '자연이 인류에게 던지는 무자비한 경고' 그 자체다. 단순히 한두 시간 동안 무더위를 잊을 시원한 영화를 찾아 <투모로우>를 튼 시청자들에게, 그리고 숨 막히는 폭염 속에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영화는 묵직하게 묻고 있다. 올여름의 이 끔찍하고 처절했던 더위가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과연 지난날의 오만을 반성하고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행동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에어컨의 시원함에 취해 다가오는 대재앙을 잊은 채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