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마음 깊은 곳까지 허기짐이 느껴질 때 가만히 꺼내보게 되는 영화가 있습니다. 사계절의 묵직한 흐름 속에서 바람과 햇살을 머금은 제철 재료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내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스마트폰 하나로 수십 가지 배달 음식을 몇 분 만에 시켜 먹을 수 있는 요즈음이지만, 영화 속 주인공 혜원이 시골집 마당에서 배추를 쓱쓱 뽑아 전을 부치고, 푹 익은 밤을 정성껏 조려내며 콩국수 한 그릇을 정갈하게 말아내는 정직한 과정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답답했던 마음의 때가 사르르 녹아내립니다. 비어있던 온기가 가슴속부터 찬찬히 차오르는 기분이 들지요.영화 속 혜원이 지친 몸과 마음을 끌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도 결국 '자신을 위해 온전히 정성을 다한 따뜻한..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사후세계에 대한 깊은 의문을 품게 됩니다. 우리가 죽고 나면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질문에 답을 내리려다 보면, 결국 우리는 애초에 어디에서 왔으며 이 세상에 오기 전에는 어떤 존재였을까 하는 기원적인 의문으로 연결되곤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영원한 소멸이 아니라 단지 존재의 형태가 바뀌는 문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직접 죽어보지 않고서야 아무도 알 수 없는 영역이기에 인류는 먼 옛날부터 이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이어왔을 것입니다. 저 역시 가끔은 품에 안긴 아이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엄마한테 오기 전에는 어디에 있다가 이렇게 온 거야? 엄마한테 와주어서 정말 고마워" 하고 나지막이 물어보곤 합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삼신할머니가 아기를 점지해서..
제목만 들으면 갓을 쓰거나 한복을 입은 소복 차림의 억울한 귀신이 떠오르기 십상인 영화가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쯤 들어봤을 전래동화 〈장화홍련전〉.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익숙한 고전 소설의 이름과 자매라는 설정만 빌려왔을 뿐, 현대적이고 기묘한 감성으로 가득 찬 심리 스릴러이자 심리 공포물입니다. 갑자기 튀어나와 고막을 찢는 비명이나 기괴한 형상의 귀신으로 놀래키는 1차원적인 공포 대신, 조용히 숨통을 조여오듯 상상할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은근하게 밀려오는 공포를 선사하는 작품이죠. 개인적으로 잔혹한 장면보다 잔잔하게 피어오르는 이런 결의 심리 공포를 가장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그 기대를 매 순간 완벽하게 충족시켜 줍니다. 말간 얼굴..
요즘 아이들도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비극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이름과 그 가슴 아픈 줄거리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워낙 세기를 넘어 사랑받아온 고전 중의 고전이니까요. 하지만 1996년에 개봉했던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은 요즘 10대 아이들에게 조금은 낯설고 생소한 옛날 영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극장에 가서 숨을 죽이고 감상하며 가슴 졸였던 기억이 아직도 어렴풋하게 남아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내 아이와 함께 이 영화를 다시 찾아보게 되다니 참 감회가 새롭습니다. 요즘 저희 집 사춘기 아이가 유독 이성에 관심을 많이 보이고, 누군가를 향한 달콤하고 설레는 감정에 눈을 뜨는 것이 눈에 띄길래 문득 이 영화를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