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란 피해자의 용서 없이도 완성될 수 있을까요? 영화 《어톤먼트》를 처음 봤을 때 마지막 장면에서 저는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인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출연 배우들도 좋아해서 보게 된 작품이었는데, 결말이 주는 무게감이 예상보다 훨씬 컸습니다. 영화는 단순히 슬픈 사랑 이야기로 보기엔 질문을 너무 많이 남깁니다.한 번의 오해가 만든 소용돌이: 브라이오니의 시선과 인지 편향영화의 비극은 거짓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잘못 본 것'에서 출발합니다. 13살 브라이오니는 분수대 장면, 도서관 장면, 숲속 사건을 모두 자신의 시선으로 해석했고, 그 해석을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브라이오니가 의도적으로 로비를 해치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
2002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2003년 아카데미 3개 부문 수상작 '피아니스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전쟁이 한 인간을 무너뜨리는 방식, 바르샤바 게토의 실상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폴란드 국영 라디오의 피아니스트였던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실제 생존 기록을 토대로 합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저는 주인공의 외모에서 먼저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창백하고 허약하게 생겨서, 이 사람이 저 지옥 같은 환경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지 처음부터 걱정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걱정은 영화 내내 현실이 됐습니다.독일은 폴란드 점령 직후 유대인 격리 구역인 게토(Ghetto)를 설치합니다. 게토란 특정 민족이나 집단을 강제로 격리하여 ..
《라라랜드》를 처음 봤을 때 저는 당연히 해피엔딩을 기대했습니다. 화려한 색감, 흥겨운 음악, 두 사람의 설레는 눈빛까지.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제 마음에 남은 건 설렘이 아니라 한동안 털어낼 수 없는 묵직한 여운이었습니다. 뮤지컬 영화가 싫다는 분들도, 로맨스 영화를 잘 안 본다는 분들도 이 영화만큼은 한 번 제대로 짚어볼 가치가 있습니다.뮤지컬의 오글거림을 넘어선 오마주 연출뮤지컬 영화를 불편하게 느끼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노래가 터져 나오는 순간, 몰입이 뚝 끊기는 경험 말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쉘부르의 우산》처럼 모든 대사가 노래인 영화는 솔직히 아직도 적응이 안 됩니다.흥미로운 건 데이미언 셔젤 감독 본인도 같은 이유로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기회 앞에서 이유 없이 주저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이유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을 두려움이라고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핑계를 만들었지만 결국은 상처받는 것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굿 윌 헌팅》을 처음 봤을 때는 천재 청년의 성공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본 영화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번에는 수학 문제보다 윌의 침묵이, 천재성보다 그가 사람을 밀어내는 이유가 먼저 보였습니다. 그 순간 이 영화는 천재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트라우마가 만든 천재, 윌은 왜 자신의 삶을 피했을까《굿 윌 헌팅》의 상징적인 장면인 MIT..